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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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좋다’

2019-03-2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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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자녀를 키운 학부모들에게는 3, 4월에 우편함만 바라봐도 가슴이 덜컹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일단 커다란 봉투가 오면 합격, 봉투가 얇으면 불합격, 안의 내용물에 쓰인 ‘ACCEPTED', 'WAITLISTED', 'REJECTED’ , 이 단어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지금, 1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매일 매시간 학교로부터 올 이메일을 기다리며 심장이 타들어갈 것이다. 미국의 대학입학 여부가 공부를 잘하고 특별활동도 많은 학생이라고 해서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이 아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불합격을 통보받았는데, 성적이 좀 모자라고 별로 자원봉사 활동도 하지 않은 친구가 합격을 하기도 한다. 이는 대학 신입생 선발심사관이 성적이 약간 부족해도 그 학생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에세이가 뛰어났거나 아니면 운이 좋아서 합격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인학부모들 사이에는 되고 안되고는 다 ‘운’이라면서 미국대학 입학은 ‘복걸복’이라는 말도 나온다.

아메리칸 드림의 첫 번째가 자녀교육,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드림스쿨 스탠포드냐’, ‘꿈에도 그리던 예일이냐?’, ‘변호사의 꿈을 이뤄줄 조지타운대냐?’ 하며 합격통지서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캘리포니아주 뉴포트 비치 소재 입시컨설팅업체 ‘에지 칼리지 & 커리어 네트워크’의 윌리엄 싱어가 30여년동안 대리시험을 알선하고 답안지를 바뀌치기 하며 대학 운동부 감독에게 뇌물을 주거나 가짜 프로필 제출 등으로 입시부정을 저지른 것이 발각되었다.
이 입시 컨설던트가 대학감독과 직원들, 입학시험 관계자들을 매수하여 예일대, 스탠포드대, 조지타운대, UCLA 등등으로 무임승차시킨 학생이 761명이라 한다. 할리웃 배우 30여명, 대기업 CEO들이 실력이 모자란 자녀들을 위해 이 편법을 이용했다.

12일에는 미 대학입학을 원하는 중국인 학생들을 위해 돈을 받고 대리 토플시험에 응시해 온 중국계 유학생 6명이 적발됐다. 지난 2015년과 2016년 용의자들은 최소 40명 이상의 대리시험을 치렀고 이 엉터리 토플시험 성적으로 UCLA, 컬럼비아대학교, 뉴욕대학교 등으로 진학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2018년 말~2019년 초 방영되어 한국 지상파방송 역대최고 전국 시청률을 올린 JTBC 드라마 ‘SKY 캐슬’이 무색할 정도다. 이 드라마 방영기간 동안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입시코디네이터 ‘김주영쌤’을 모르면 대화가 안될 정도였다.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출신 입시 코디네이너 김주영은 살인, 살인교사, 시험지유출 등 온갖 불법과 범죄를 저지르며 맡은 학생의 ‘서울의대 입학’을 종용한다. 한국의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열풍을 고발한 드라마라지만 ‘서울의대’가 목표인 학생과 학부모들이 불쌍했었다. 콤플렉스가 강하고 허영과 욕심 가득한 부모가 아이에게 상위 0.01%의 삶을 살자면 오로지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맹목적 아집, 무섭고 살벌했다.

이번에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 공부를 한 당사자나 뒷바라지 한 부모나 다들 열심히 하지 않았는가. 할 만큼 했으니 결과가 안 좋더라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자. 아직 젊음이 창창하니 다음엔 더욱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면 된다.

그리고 일류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일류 인간은 아닌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공부는 좀 모자라도 착하고 성실한 내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자. ‘실력이 좋다’는 말보다 ‘사람이 좋다’ 는 말을 들어야 한다.

한국 드라마 ‘SKY 캐슬’ 과 비슷한 ‘미국판 SKY 캐슬’이 충격을 주긴 하지만 뒤늦게나마 거짓이 밝혀졌고 관련자들은 모두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미국에 사는데, 수백 년 이어져온 미국의 대학 신입생 선발 심사관들이 공정하다고 믿고 싶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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