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커피, 과유불급

2019-03-19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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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불면증이 있다. 병원에 다니면서 생겼다. 근무할 땐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오전 7시 교대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혹 늦게 일어날까 봐 밤새 한 시간 간격으로 깨서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니 졸린 눈을 커피로 억지로 뜨고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9시가 넘었다. 저녁 차리고 설거지하고 나면 12시. 피곤해도 잠잘 시간을 놓쳐서 잠을 쉽게 못 들었다. 그리곤 다시 한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병원에 가야 했다.

커피와 친해지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운전하고, 커피를 마시며 일하는 중간중간 버티고, 그렇게 커피를 마시니 또 저녁에 잠을 못 잔다.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서니 빠져나오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끊어내야 할지 몰랐다.


아무리 긍정의 마음으로 일을 해도 영어는 여전히 외국어고, 문화의 충격은 잊을 만하면 날 괴롭혔다.

12시간 동안 밥 먹을 시간이 없는 노동의 강도에서 카페인으로 인해 화장실 가는 시간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시간이었다. 밥은 5분 안에 입안으로 털어 넣어야 했다. 잠시 너무 피곤해서 의자에 기대려고 하면 누군가가 매니저에게 보고했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선 잠깐 졸 수도 있고, 날 부르는 환자와 의사의 호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커피의 카페인을 더 찾았던 것 같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다보니 커피 마시기에 빠져들었다.  커피가 몸에 나쁜 것을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내 몸에 카페인을 부어 넣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내느라 카페인에 빠져든 것이다.

병원을 그만두고서도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물처럼 마셨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아는데도 커피를 종일 마셨던 건 '나 이렇게 커피를 마셔야만 버틸 만큼 힘들어'라는 나만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카페인 과다 섭취가 비만과 심장질환 등에 관련 있기에, 그리고 나의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과감히 줄였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넣던 우유가 송아지와 억지로 이별한 엄마 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곤 정말 노력했다. 커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그렇게나 좋아하던 카푸치노를 멀리했다.

작전을 세웠다. 우유가 들어간 카푸치노보다 그냥 블랙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블랙커피를 3잔 이상 마시니까 머리와 위가 아팠다.

성공한 것이다. 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우유와 커피를 멀리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 카페인 과다 섭취가 쉽게 화내는 것과 영향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아이에게 짜증을 배출한 것도, 다시금 찾아온 불면증도 꾹꾹 담아 마시는 2~3잔의 블랙커피 탓이 아닐까 싶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못 미치는 것 보다 못하다. 내 건강과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그냥 하루에 한 잔이 딱 좋을 것 같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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