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춘분(春分)

2019-03-19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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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이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정원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얼마전 내린 춘설은 자취를 감추었다. 얼었던 땅도 녹았다. 봄의 활기찬 움직임이 땅속에서 소리치고 있다. 생명력이 넘치는 봄. 뭔가 마음 속에도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듯하다.

봄이 오는 정원. 수선화 싹이 쑥 자랐다. 튜울립은 꽃망울이 자리하고 있다. 봄꽃들이 앞 다투며 개화를 준비한다. 며칠 전 밤새 내린 비 덕분에 온 세상이 향기로운 봄의 정원이 되고 있다. 세상이 시끄러워도 3월 중순이 되니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나보다.

봄나물인 냉이는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향기의 전령사다. 곁에 돋아난 달래는 머리 풀어 헤친 모습을 뽐낸다. 위로 삐죽 솟아난 어린 쑥의 모습도 향기롭다.


지난 3월 6일은 경칩이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절기다. 그 날이 지나고 나니 봄비가 밤새 내렸다. 촉촉해진 대지 위로 파릇파릇한 새싹들의 키가 쑥 자랐다. 노릇노릇한 개나리도 개화를 재촉한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싱그러운 바람이 뺨을 어루만진다. 봄처녀뿐만 아니라 중년 남성의 마음마져 설레게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마음이 허무로워 진다.

봄이 오는 3월에는 춘분(春分)이란 절기가 있다. 일년 24절기의 네 번째 절기이다. 이 날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고 매년 일정하지는 않다. 매년 3월 20일이나 21일 무렵. 올해는 21일이다. 이 날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늘인 3월 18일 현재 베이사이드 지역에 해 뜨는 시간은 오전 7시3분. 해 지는 시간은 7시 5분. 낮의 길이는 12시간 2분 . 밤의 길이는 일몰 시각부터 다음 날 일출 시각까지다. 그러니 밤의 길이는 11시간 58분. 아직 춘분(春分) 2일 전인데 벌써 낮시간이 밤시간보다 길다. 왜 그런 것일까?

이미 낮이 밤보다 길어진 건 일출, 일몰 시각을 계산하는 방법 때문이다. 춘분은 태양의 중심이 떠오를 때부터 중심이 질 때를 낮의 길이로 본다. 태양의 가장 윗부분이 지평선에 보이기 시작할 때가 일출시작이다. 일몰은 태양이 지평선이나 수평선 아래로 완전히 사라질 때를 말한다. 그래서 춘분의 밤낮 길이는 태양 반지름 만큼 오차가 생기는 것이다. 여하튼 춘분부터는 낮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셈이다.

태양의 중심과 일치하는 날인 춘분절기 관련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선 이날 날씨로 그 해 농사의 풍, 흉년을 점쳤다고 한다. 이날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다고 생각했다. 구름이 한 점 없이 청명하면 열병이 들어 만물이 자라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구름 색으로 한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구름 색이 검으면 수해를 입고, 붉으면 가뭄을 당하고, 푸르면 충해를 입을 것으로 여겼다. 풍년이 든다고 점친 구름색은 누런색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춘분 날씨는 구름이 많고 어두운 것이 좋다고 여겼던 셈이다.

왕조실록에 따르면 낮이 길어지는 춘분을 기준으로 아침, 점심, 저녁 등 세끼를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낮이 줄어드는 추분이 되면 다시 아침, 저녁 두끼밥으로 환원해 해가 짧은 겨울 동안에는 세끼밥을 두 끼로 줄여 양식을 아꼈다.

개신교에서는 춘분을 부활절 계산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매년 부활절 날짜가 바뀌는 이유다.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부활절은 춘분(음력기준) 후 첫 번째 만월(보름)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이다. 올해 춘분은 3월21일, 음력으로는 2월15일이다. 다음 만월은 음력 3월 15일이 되는 4월 19일이다. 그래서 그 다음 첫 주일인 4월 21일이 올해 부활절이다.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한 나라도 있다. 춘분을 깃점으로 어둠은 짧아지고 빛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란은 춘분이 새해 첫 날이 되도록 매년 달력을 조정하고 있다. 멕시코 사람들 역시 춘분을 새해의 시작으로 여기고 있다.

2019년 새해 계획을 세운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다. 올해 양력과 음력 1월1일인 새해 첫 날에 세운 계획이 이미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닌지. 오는 21일 또 한번의 새해인 춘분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새해 계획을 세워봄은 어떨까.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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