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노래에 ‘처녀 총각 노래’라는 것이 있다. 가사는 이렇게 나간다. ‘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네 ’ 봄이 되면 처녀 총각의 마음이 들뜬다는 것을 재미있게 봄 동산에서 나물을 캐는 풍경에 견주어 노래한 가사이다.
금년 봄은 공식적으로 3월 20일에 시작된다. 필자는 뉴욕의 젊은 검사들로 조직된 ‘특별타격대’(Strike Force)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의 경험으로 볼 때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남을 미워하는 자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결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자가 파괴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소위 ‘부활의 신앙’이란 부정적인 인간을 긍정적인 새사람으로 거듭나게(重生) 하는 것을 가리킨다.
캘리포니아 주 산 알토스에 ‘봄소식을 전하는 우체부’란 별명으로 불리는 우체부 힐 씨가 있다. 그의 우편물 배달 구역은 50 마일이나 되는 넓은 지역이다. 그는 “군데군데에 꽃씨를 뿌려 놓으면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여 즉시 실천에 옮겼다. 힐 씨의 좋은 취지를 듣고 여러 사람들이 꽃씨를 기증하였다. 1년 후 삭막한 광야가 꽃으로 덮였다. 행복한 세상은 누군가가 먼저 한 구석에서 시작해야 되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앨라배마에서 첫 설교를 할 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봄소식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사실 성경의 복음이란 말은 그리스어의 ‘유앙겔리온’에서 나왔는데 ‘기쁜 소식’이란 뜻이다. 봄소식이란 추위가 사라지고 따뜻한 계절이 출발한다는 희망과 기쁨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나무도 풀도 기지개 키며 일어서는 이 재생의 계절에 그대도 긴 동면에서 일어나라. 상처입은 쓰라린 과거에서 일어나 새날을 바라보라. 하늘 봄기운을 받고 그대도 꿈틀거려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나 오랫동안 맥 빠져 누웠던 벌레의 온상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환희와 사랑하는 기쁨을 맛보지 않으려는가! 나의 좁은 고치에서 탈출하여 나비처럼 훨훨 날아야 하지 않겠는가!
봄은 새 출발의 계절이다. 미워서 스팀이 솟는 분화구에서, 싫어서 죽고 싶은 그 늪에서, 몸부림치며 혼자 싸우지 말고 과감하게 벗어 나와야 한다. 걱정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그 지옥에서, 욕심이 한없이 솟는 경쟁의 싸움터에서, 질투가 이글거리는 아수라장에서, 하루 빨리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 드디어 봄이 왔다. 황금의 송아지를 쫒던 우상의 신당에서, 무엇과도 흥정해 버리던 비겁자의 장터에서 과감하게 해방을 받으라.
한국 가정은 전통적으로 입춘이 되면 입춘대길(立春大吉)을 큼직하게 문지방에 써 붙였다. 새봄이 되었으니 아주 큰 좋은 일이 생기라는 일종의 기원(祈願)이다.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봄기운이 천지에 가득하다. 대자연도 봄이 되며 설레고 꿈틀거려 움직임을 보인다. 뉴저지 주에서는 개구리 행진으로 장관을 이룬다. 호수가 많기 때문에 각 호수에서 개구리들이 나와 산란을 위하여 길을 건너간다. 하이웨이 횡단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개구리들은 후세를 위하여 봄이라는 이 좋은 계절을 놓칠세라 결사적인 행군을 감행한다.
흑인 여성 조이스 애킨스 씨는 뉴저지 주 파라무스 재활원에서 투병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으나 미술에 소질이 있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린다. 주로 세계 명화들을 복사한다. 1년 동안 그린 그림들을 봄이 되면 팔아서 신체장애자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며 보람이다. 그녀야 말로 봄의 향기를 가진 천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