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90세가 넘어서 내가 한 일을 생각해보면 그렸다, 썼다, 만들었다는 세 마디로 정리가 된다.
(1) ‘그렸다’는 시절은 매일 무엇인가 그렸다. 선친은 내가 유치원시대부터 그림들을 모아서 연도별로 책을 만들었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학년별로 모든 성적물을 모아 한묶음씩 책으로 보관하였다. 그 이유에 대한 선친의 설명은 내게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퍽 재미있었다. 또한 이런 습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니 지금도 그대로 이어진다.
요즘은 나가는 시니어센터에서도 교실에 있는 비어있는 게시판에 계절이나 행사에 알맞는 그림으로 장식하겠다고 자원하여 진행 중이다.
그동안 그린 그림들은 주로 어린이들이었다. 교실에서 사용하는 시청각자료를 비롯하여, 교과서, 문집, 신문---등 어디든지 그림이 필요할 때는 그 자리를 메꾸었다. 결코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언제나 움직이는 어린이들이 주제였다.
때로는 대담하게 New York에서 3회의 개인 미술전을 열었다. 이런 무모한 용기는 한국에서 모 신문사의 동화 삽화를 그린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내 책을 가지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이 책을 써요?’ 3학년때 부모님께 질문했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글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런데 1964년 모 신문사에서 ‘일선교사’의 수기를 현상모집 하였다. 거기에 응모하여서 내 글이 선발되었다. ‘제가 삽화를 그리고 싶어요’ 신문사를 방문하여서 삽화를 그리겠다고 자청하였고 승낙을 받았다. 64회에 걸쳐 신문에 나가는 동안 무척 기뻤다. 이 체험이 그림을 그리기에 자신을 가지게 된 동기이다.
(3)‘만들었다’는 어린이연극단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1973년 뉴욕한국학교를 개교하고 나서는 어린이 연극의 꿈을 키웠다. 어렸을 때 동양극장에서 아역인 조미령이 부럽던 일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뉴욕의 세 극장에서 모든 것을 갖추고 세 차례 공연을 하였다. 개교 25주년을 기념한 ‘심청, 뉴욕에 오다’. 개교 32주년을 기념한 ‘나무꾼과 선녀’, 개교 35주년을 기념한 ‘흥부와 놀부를 만나다’가 그 내용이다. 이 세 가지 연극공연은 제대로 하여서 어린이들에게 연극공연의 본보기를 체험토록 하였다. 출연한 어린이들에게는 연극 포스터를 선물로 주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야 마는 성격 때문에 힘들 때도 많지만, 일의 성취감이 이를 탕감 한다.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다. 무엇인가 하고 있어야 사는 것 같다. 내 일생동안 ‘그렸다, 썼다, 만들었다’ 는 책읽기, 연극관람, 미술전람회 순례, 각 모임 참가 등으로 발전한다. 나이가 들어서 활동할 수 없으면, 보고 느끼는 것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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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전 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