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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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

2019-03-13 (수) 소병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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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밤사이 도둑눈이 내렸다. 부엌창살에 배배꼬인 담쟁이 덩쿨에 작은 참새 한 쌍이 앉아 부엌을 기웃 거리며 무어라 지껄이다 날아간다. 앉았던 가지위에 하얀 눈이 솜덩이처럼 소르르 떨어진다. 남편이 그 장면을 보고 빙긋이 웃는다. 자유스런 몸짓으로 그들이 허공을 가르며 높이 나르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얼굴 방향은 새들이 날아간 뒤에도 바뀌지 않는다.

썰물처럼 아이들이 빠져나간 아침. 우리 시니어 두 사람은 부엌에 있는 작은 식탁에 마주앉았다. 나에게 이 시간은 새벽부터 움직이던 두 다리를 쉬게 하고 오늘 조간신문을 둘이서 펼쳐 든다. 시력이 약한 나와 남편은 커다란 활자로 된 타이틀만 우선 훑어보고 신문을 접는다. 다음엔 우리 두 사람의 식사가 준비된다.

아이들 점심으로 김밥을 말아 싸 주면서 여분으로 김밥 두 줄을 남겼다. 뽀얀 접씨에 맛깔스레 썰어 놓은 김밥 두 줄, 남편이 좋아하는 나무젓가락,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일본된장(미소)국에 파란 파 몇 조각이 띄워져 깔끔하게 국그릇에 담겨진다. 게다가 말갛게 보이는 나라즈께 (일본 장아찌) 몇 조각은 우리 둘 다 좋아하는 밑반찬이다.


남편은 “아침부터 웬 김밥?” 하면서 식사할 태세로 어줍게 의자를 앞으로 잡아당긴다.
그리고 김밥 한 개를 젓가락으로 힘겹게 집어 올리다 젓가락이 틀어지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편은 계면쩍게 웃으며 “내가 말뚝남편이 돼 버렸군!”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십여년 전 이른 아침이었다. 멀쩡했던 다리에 힘이 빠진다며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당황한 식구들이 도움을 주었지만 남편에게는 별 도움이 못 되었고 혼자만의 힘으로는 여타의 거동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후 2개월 여의 병원입원은 끝났지만 잦은 병원 통원치료, 담당의사의 철저한 처방약의 투여, 음식조절, 보험사에서 파견된 간호사의 도움 이런 환경들이 그나마 지금의 그를 만들 수 있었던 조건이 된 것이다.

그가 사회생활을 했던 과거 60년대나 70년대의 사회문화는 술과 담배는 떨어질 수 없는 무대였다. 고렇게 오랜 찌든 생활의 축적된 결과물이 뇌졸중이라는 오늘의 현실로 자리 매김 된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고전음악 감상 또는 고전 서적이다. 앉으면 듣거나 읽는다. 그럴 때마다 운동 좀 하라는 내 잔소리가 계속되곤 한다.

어느 날 내게 이런 글을 슬며시 내밀고 휠체어를 밀며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송곳같이 찔러대는 아내의 잔소리, 굴비두름처럼 주엄주엄 엮어 메고, 곤두박질치듯 문밖을 나서니, 지고나온 아내의 지청구는, 가벼운 깃털이었네, 마음을 비우고 하늘을 보니, 구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름질 하네, 아서라, 서운타 하지말자, 아내와 나는 저 떠다니는 한 덩이 구름, 우리도 삶의 한 조각인 것을.....’

난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박완서씨의 어떤 수필의 끝자락이 생각났다. “나를 어머니처럼 느꼈고, 그를 생전 어른이 될 가망이 없는 어린애처럼 느꼈고, 그런 느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 글은 나를 향한 말처럼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오늘도 아침식사 후엔 그를 향해 운동이란 단어를 수없이 내뱉어야 하겠지.
그는 젊었을 때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다. 먹는 것, 입는 것, 출입하는 것 모두가 자기가 아닌 또 한사람의 손이 필요로 한다는 것이 마치 땅에 깊이 박혀있는 말뚝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소병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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