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굳이 안 써도 될 사람이 쓴다면, 그의 세계는 삐걱거릴 것이다. 반면 글을 꼭 써야 할 사람이 안 쓰고 있다면, 그의 세계 역시 삐걱거린다.’
삐이걱 쿵! 금방 멈출 듯한 엘리베이터가 불안하여 눈을 돌리던 중에 이 문장이 들어왔다. 육중한 엘리베이터의 벽면은 작가들의 명언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픽션 라이브러리에서 하는 미술사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였다. 허구를 지어내는 소설만 소장하는 이 도서관 건물은 어둡고 침침했다. 어느 구석에 몇백 년 된 소설의 인물이 웅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 안에도 무엇인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웅~ 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꺼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소리는 점점 커졌다. 어딘가 나가야 했다. 괴물처럼 커진 그것에게 먹히기 일보 직전에 나는 뉴욕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매주 강의를 들었다.
미술사강의는 신세계였다. 그간 신문도 책도 영화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세상사를 몰라도 별지장 없었고, 간혹 누가 빌려준 ‘베스트셀러’는 나의 관심을 떠난 연애사 일색이고, 어쩌다 보는 영화의 감정 롤러코스터에 휘말리기는 더욱 싫었다. 멜랑콜리한 음악도 피했다. 몰라서 공감되지 않는 클래식 음악만 운전 중에 틀었다. 이것저것 다 쓸려나간 자리에 공터가 생겼다. 깨끗했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웅~은 언제부터 들어와 있었을까.
강의는 깊었고, 빨랐고, 이미지 클립은 휙휙 넘어갔다.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그것들은 내게 새로운 언어였다. 집에 와서 그림을 찾고, 그림에 설명을 써넣고, 프린트하여 바인더로 묶었다. 공중으로 사라질 강의를 실체로 붙잡았다고 느꼈다.
이런 나의 속내를 끄집어낸 한 친구는 남의 말을 카피한 가짜 글을 왜 쓰냐고 말했다. 순간 나는 찔렸지만, 진짜건 가짜건 상관없었다. 텅 비어 있었기에, 무엇이든 넣어야 했고,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글로 적어서 붙잡아 둘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면, 그 소리가 다시 들린다.
이번에는 책을 펴들었다. 책은 아는 체 하지 않는 거만한 친구다. 두세 번 만나야 자신의 속내를 조금 말해준다. 내용을 요약하고, 구절도 적으면서, 여기까지는 정성을 들이면 어떻게든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책에 대한 내 의견을 내기는 힘들었다. 나만의 감성이나 생각없이, 이것 역시 남의 것을 다시 꺼내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내 것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아니 내 것이 있기나 한가?
답을 찾겠다고 그것에만 웅크려 있지 않을 작정이다. 세상일은 지나간 후에야 아주 조금씩 알게된다. 잊고 있다 보면 퍼즐 조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가 삐걱거리며 멈출 듯 말 듯 하다.
도시에서 길 따라 걷다 보면, 여기가 저긴 듯 비슷하여 길을 잃는다. 길 찾다 보면 나는 간데없다.
나를 잊으니, 우웅~소리도 잦아든다. 그것은 빌딩 사이로 부는 가짜 바람에도 속을 만큼 어리석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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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전 공립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