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내 가슴 속에 한 마리 곱게
키운 파랑새는 멀리 날아가고 마지막
내 희망을 불사르고 떠나는 날
이름없는 가난한 한 마리 학으로 남고자
빈가슴 갈증을 풀 길 없어 이 산 너머 또
저 산 너머서 사공없는 저문 강가에 앉아
시화(詩花) 한송이 비가를 띄우며 묻노라
구법(求法)의 순례자여, 해동고승 혜초(慧超)여
불 하나 몸에 지니고 물어물어 동토의 파밀고원 너머
황사의 모래 속 출구없는 고행길의 세월
환(幻) 속을 헤맸던 신라사람 고불(古佛)이여
그대가 찾아가는 비경법문은 어디 쯤에 열려있는가
천축(天竺)의 밀경(密經) 의 문이 환이였던가
돈황석굴의 진토에 누워있는 납자(衲子)여
무슨 법문을 얻었다 하랴 우리와 함께 살아왔던
생과 사, 모두 덧없는 환(環)인 것을
흔적조차 알 길 없는 그대, 환상의 열반에 들었는가?
그대 한 사람만의 생을 위해 일천삼백년을.
덕화(德化) 없는 나는 이국(異國)의 풍한설에 늙었노니
이제 와 시객의 산방에 법신불(法身佛) 왔다기에
미수의 고종명 한 생이기를 염원하여 염치없는
노구를 끌고 길 하나 얻을 가 산에 가네
산 높고 골 깊은 겨울산 숲나무 즐비한 나목들
춘·하·추 호시절 살찌운 속살을 드러내 놓고
대한(大寒) 아침 햇살을 쬐며 말리고 있구나
동천(冬天)과 백산(白山)의 경계 능선 따라
일렬 행렬로 늘어선 벌거벗은 수목 사이로
반짝이는 눈부신 광채의 파동, 파도의 은빛살 물결처럼
뭇 어둠 속의 생명들을 일깨우니 동안거(冬安居)
한 선승은 유광(幽光)의 눈을 뜨고 끔벅끔벅
말 한마디 없이 선문(禪門)을 닫는구나
아, 내 몰랐던 저편의 또 다른 환상의 세상이 있었음인가
법풍(法風)의 환이요, 무상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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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농/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