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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2019-02-26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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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날이다. 3.1운동은 일제의 강점시기에 독립운동이 체계화되는 기틀이 됐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대한민국 항일독립 운동사의 금자탑은 3.1운동인 셈이다. 3.1운동으로 숭앙하는 대표적 인물은 유관순 열사다. 영원한 누나이자 언니인 애국소녀. 그는 일제에 항거하여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의연히 죽어간 참된 영웅이다. 그가 당한 혹독한 고문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잔혹했다. 하지만 오로지 대한 독립을 외치는 그에게는 쓸모 없는 짓. 아무런 가치조차 없는 하찮은 것일 뿐이었다. 유관순이란 이름 석자는 조국을 잃은 한이 담겨있다. 순종하지 않고 맞서서 반항하는 이미지도 스며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저항의 상징이다. 어디선가 “내 뜻을 목숨에 담아 조국에게 바칩니다. 대한독립만세”라는 그의 절절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충남 목천(현 천안) 출생이다.1916년 캐나다 출신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했다. 그후 1918년 고등과 1학년에 진학, 1919년 3.1운동에 동참하고 5일에는 5명의 시위결사대 동지들과 남대문역 만세 시위운동에도 참여했다.. 일제총독에 의해 휴교에 들어가자 즉각 귀향해 만세시위운동을 추진. 천안, 연기, 청주, 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해 만세운동을 협의. 드디어 4월1일 아우내 장터에서 3, 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했다. 그날 시위 주동자로 체포돼 천안헌병대로 압송. 이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 이후 서울 서대문 감옥으로 이송돼 투옥. 그곳에서도 옥중 만세는 이어졌다. 1920년 3월1일에는 수감 중인 동지들과 대대적인 옥중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서울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중 일본인 검사에게 걸상을 던져 법정모독죄가 가산 7년 형을 선고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갖은 악형에 시달리다 1920년 9월 28일 옥사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8세 였다.

3.1운동 당시 순국선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바쳐 오늘을 있게 했다. 한분 한분 모두가 더 없이 거룩하고 위대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의 대표적 인물은 여전히 애국소녀 유관순 열사의 몫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17세 어린소녀의 몸으로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일본헌병대의 혹독한 고문과 재판과정에도 굴하지 않았다. “내 나라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느냐?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인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나를 재판하느냐?”라고 당당히 항변했다. 모진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국하면서도 “조국에 바칠 수 있는 목숨이 하나뿐인 것이 안타깝다”고했다. 유관순 열사가 민족적 영웅으로 칭송되는 것이 마땅한 이유다.
유관순 열사의 일생은 지난해 3월 뉴욕타임스(NYC)의 보도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NYC는 유관순 열사의 출생, 성장과정, 고향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업적 등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그리고는 ‘3.1운동을 즉각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민족 단결의식을 공공히 하고 일제에 대한 저항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뉴욕주가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3.1운동의 날 결의안을 채택했다. 롱아일랜드 낫소카운티도 3.1운동의 날을 지정하고 ‘유관순 열사의 상’도 제정했다. 콜로라도에서도 유관순 열사의 업적을 기리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그 이유는 3.1운동이 자유와 인권을 위한 대한민국의 투쟁이고 전 세계가 공유해야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의 정치력이 성장했고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결과이기도 하다.
한인사회가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뉴욕일원에서 그 어느때보다 조국 선열들의 혼과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각종 기념행사와 문화공연이 풍성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만세운동도 재연한다. 3.1운동은 ‘한마음 한뜻’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인 모두가 각종 3.1운동행사에 동참해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며 ‘그날의 함성’을 함께해야 하는 이유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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