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링컨의 얼굴

2019-02-18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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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탄생 기념일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이 2월 22일이어서 미국은 2월 셋째 월요일을 ‘대통령의 날’(President' Day)로 지키며 국가공휴일이다. 역사가인 웰즈(H.G.Wells)는 “링컨은 미국의 위인을 넘어 세계6대위인 중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몰라도 링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만큼 유명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나는 링컨의 얼굴을 좋아한다. 특색 있게 생기기도 하였지만 성실과 정직, 인자와 강한 의지까지 동시에 새겨져있을 뿐이 아니라, 고생과 눈물과 땀의 자국이 역력하며, 관대함과 이해심과 통찰력까지도 고루 갖춘 얼굴이다.

링컨만큼 고생을 많이 한 사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는 손에서 도끼 자루를 놓아보지 못하였다. 직업만 하더라도 뱃사공, 농부, 노동자, 장사꾼, 품팔이, 군인, 우체부, 측량사, 변호사, 주 의원, 상원의원, 대통령까지 두루 거쳤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닌 것은 모두 합해서 1년도 되지 않는다. 그는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혼자의 노력으로 유명한 웅변가가 되었다.


링컨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고 말하였다. 그는 문학 수준에 있어서도 섹스피어와 성서 연구에 있어서 전문가 수준에 달해 있었다. 1865년 57세라는 젊은 나이에 흉탄에 맞아 숨질 때까지 그는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며, 사랑을 나누어주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링컨 시대의 최고 신학자로 알려진 윌리엄 월프 교수는 링컨 대통령과 두 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마친 후 이런 평을 하였다. “링컨은 훌륭한 신학자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문제 등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고 믿고 있었으며 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링컨은 한 마디로 어떤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달려간 사람이었다. 그는 한 때 실업계에 들어갔는데 동업자를 잘못 만나 파산하였다. 한 처녀를 몹시 사랑하였었는데 그녀도 갑자가 죽고 말았다. 하원의원 재선에는 실패하였다. 정부 토지국에 임명받으려고 애썼는데 그것 역시 실패하였다. 상원의원에 입후보했었지만 역시 낙선, 부통령 후보도 되었지만 또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를 실패자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만난(萬難)을 뚫고 나간 최후의 승리자였던 것이다.

워싱턴에 가면 링컨이 애독하던 그의 성경책이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성경에는 손때가 묻은 지국이 있다. 여러 번 같은 장소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자국이다. 그곳은 시편 34편 4절이다. “내가 하나님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가 남북전쟁의 고통스럽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를 도와주신다고 믿었던 것이다.

1865년 4월 14일, 부인 메리와 함께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감상하고 있었다. 연극이 끝날 무렵 그는 부인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여보 내 평생소원은 당신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는 것이오. 예수님이 거닐던 그 길들을 나도 걷고 싶소. 나사렛의 그 벌판, 베다니의 그 길...” 바로 이 때 존 부스의 권총이 링컨을 겨누었다. 링컨이 예루살렘이란 말을 다 못 끝내고 “예루..”까지 발음했을 때 날아온 총알이 그를 쓰러트렸다. 참으로 아까운 인물이 단명으로 숨을 거둔 것이다. 링컨이 남긴 명언 한 마디. “나는 천천히 걷는 습관이지만 절대로 뒤로 걷지는 안는다.” 그의 진보적인 인생관을 나타내는 말이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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