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님들의 꿈을 꾸며…

2019-02-15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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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가끔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당신은 비전을 보는 나이고 나는 꿈꾸는 나이야”라고 말 할 때가 있다. 크리스천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 차리겠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 일 것 같다. 구약성서 요엘서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면 그 때에“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visions)을 볼 것”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성서의 큰 예언적 맥락을 떠나서 우리의 가벼운 일상의 대화 속에서는 그것이 당신은 젊고 나는 나이가 많다는 정도의 뜻일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징조인지 꿈을 자주 꾼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붙잡고 반가워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고 이제는 알아 볼 수 없이 변한 서울과 고향의 산천에서 집을 찾지 못해 헤매는 허전한 꿈도 꾸게 된다.

오늘 아침 늦잠을 잔 탓인지 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신 누님의 꿈이 예사롭지 않았다. 눈 오는 날 아침에 숲속을 걸으며 넘어지고 미끄러져 여기 저기 온 몸에 멍든 것을 아셨는지, 누님은 “몸은 어떠냐? 몸 아픈 데는 순두부가 좋다더라” 하시며 ‘새벽 두부공장에 가서 막 가져온 뜨거운 순두부’ 한 사발을 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대는 데모로 보낸 세월이었다. 봄이면 최루탄 연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고, 대학신문 기자로 있던 나는 소위 반정부 글을 쓴 탓에 끌려가서 얻어맞고 구치소에서 보낸 시간도 적지 않았다. 새벽에 담을 넘어서 도망치던 기억이며,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누님 댁을 전전하던 기억들이 왜 꿈속에 갑자기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네 분의 누님이 계셨다. 두 분은 돌아가셨고 두 분은 한국과 캘리포니아에 살고 계신다. 큰 누님은 인천에 사셨는데, 내가 찾아갈 때 마다 신선한 생선을 숯불에 구워 주셨다. 한국을 떠난 후 그런 생선구이 맛을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본 일이 없다. 순두부를 상에 올려주시고 옆에 앉아 찬찬히 나를 돌아보시던 둘째 누님은 돌아가셨다. “얻어맞아 골병 든 데는 순두부가 제일이다. 많이 먹어라…” 얻어맞고 자란 적이 없는데, 다 자라서 대학생이 된 막내 동생이 맞아서 멍든 이 곳 저 곳을 돌아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누님을 꿈속에서 만나보며, 나도 눈물을 흘렸다.

대전에 사시던 셋째 누님은 대한민국 효부상을 받으신 분이다. “배고프지 이 것 마셔라” 우유에 계란을 풀은 큰 대접을 거의 반강제로 먹이시던 누님이 어디서인지 염소고기를 구해다 탕을 끓이시고 수육을 만들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의과대학 학장을 하시던 매형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데모나 하는 녀석”이라면서도 내가 떠날 때는 항상 용돈을 듬뿍 쥐어주셨다. 그러나 나와 가장 가까운 누님은 막내 누님이었다. 나의 바로 윗 누님이었는데, 영국인 변호사와 결혼해서 영국에 사셨다. 내가 거의 쫓겨나듯이 한국을 떠나서 간 곳은 영국이었다.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공부하기도 어려웠던 그 시절, 막내누님이 만들어 주시던 라자니아를 나는 아주 좋아했다. 영국 특유의 소의 혀(Cow Tongue) 요리를 누님은 특별히 잘 만드셨고, 주말마다 누님댁에 가면 예외 없이 그 요리를 즐겼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오늘 아침 꿈속에서 맛본 누님의 순두부를 다시 생각하며 그 맛을 기억할 수 없는 아쉬움에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눈 속에 넘어져 멍든 무릎, 손등의 상처와 통증, 삶과 죽음으로 나뉘어져 이제는 헤일 수 없는 누님과의 저 아득한 거리감도 꿈속에서는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성서적 맥락에서 꿈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영원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모두 엮어 보여주는 것이 꿈이요 그 꿈이 보여주는 새로운 희망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밤이 늦다. 이제 또 꿈꾸러 가야할 시간이 된 것 같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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