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네 가지 원형

2019-02-09 (토)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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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무엇이 사랑일까. 에로스(eros). 에로스가 사랑일까. 아니면 애정(愛情)이 사랑일까. 애정이란 또 무엇일까. 애정(deepest interpersonal affection). 어팩션(affection)이란 단어. a feeling of liking and caring for someone or something이다. 풀이하면 사람이나 물건 등을 좋아하거나 돌보는 감정이나 느낌이다.

그러니 애정이란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물건이나 다른 동물에게도 허용된다. 허긴 못된 사람보다도 반려동물, 고양이나 개 등에게 더 애정을 쏟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렇다. 아니, 그보다 더 자동차나 자신이 가진 어떤 소장품에 애정을 두는 사람도 많다. 이렇듯 좋아하고 돌보려는 감정을 애정이라 볼 수 있다.

사랑의 속성에는 네 가지 원형이 있다. 1.에로스(Eros). 2.스토르게(Storge). 3.필리아(Philia). 4.아가페(Agape). 에로스는 이기적이고 성적이며 동물적인 사랑. 스토르게는 부모와 자식관계의 혈연적인 사랑. 필리아는 친구끼리의 우정. 아가페는 이타적인 사랑, 즉 신적인 사랑이다. 여기서 인간은 어떤 사랑의 속성에 속해 있을까.


네 가지 모두에 속한다. 사람이란 에로스에 의해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 양육받고, 필리아에 의해 다듬어지고, 아가페에 의해 완성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사람의 일생을 돌이켜서 사람의 속성을 보면 이 네 가지 사랑이 함께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생이 변하는가, 사랑이 변하는가. 둘 다 변하는 것 같다.

두 젊은 남녀가 죽도록 사랑해 결혼한다. 검은머리 파뿌리처럼 하얗게 될 때까지 끝까지 변치 않겠다고 서약 한다. 눈보라와 비바람, 폭풍우가 내리치는 때가 오더라도 끝까지 사랑한다고 약속한다. 아플 때나 즐거울 때나 서로 보호해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부모형제, 친구,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결혼반지를 끼워준다.

결혼반지가 가진 의미. 결혼반지는 대개 원형으로 된 링이다. 원형이란 처음과 끝이 없다. 영원성이 그 의미다. 반지는 순금이나 다이아몬드를 택한다. 순금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색깔을 갖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부서지거나 깨지지 않는 속성이 있다. 두 사람의 언약이 이런 반지를 서로 줌으로 영원히 갈 것을 서약한다.

그래서 결혼반지는 도둑 안 맞게 소중히 간직하는 게 좋다. 어느 어머니들은 그 반지를 딸에게 물려주기도 한다. 그 딸은 또 딸에게 물려주어 그 반지는 집안에 가보가 되기도 한다. 어느 친구의 부부. 미국 온지 얼마 안 돼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집안에 들어와 결혼반지 등이 간직돼 있는 보석함을 들고 달아났다.

그렇다고 그 부부가 깨어졌을까. 아니, 도둑맞은 걸 누구에게 불만을 토로하랴. 두 부부는 마음으로 다짐했기에 지금까지 잘 살아오고 있다. 그러니 마음이 문제다.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끝까지 갈 수 있다. 죽을 때까지 갈 수 있다. 사랑의 가장 중요한 키(Key)는 Liking(좋아함)에도 있지만 Care(돌봄)에도 있다.

살다보면 벼라 별 일을 다 부닥뜨리는 게 부부관계다. 인생이란 24시간 줄곧 좋은 일만 생기는 게 아니다. 늘 얼굴에 웃음 간직한 채 살아갈 부부가 몇이나 될까. 병이 들 때도 온다. 에로스 적인 열정적인 사랑 좋다. 그러나 아니다. 부부가 아플 때 걱정해하며 시중 들어주는 돌봄의 손길이 진정한 사랑 아닐까.

에로스적인 관계에서 인간은 태어난다. 부모자식이 된 관계. 천인연(天因緣) 지간이다. 하늘의 혼과 땅. 육신 속에 천과 인과 연이 합쳐진 관계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끊을 레야 끊을 수 없다. 죽어도 내 자식, 내 부모다. 살면서 이어지는 친구와의 사랑. 숭고한 우정이다.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이다.

발렌타이데이. 자신의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 사랑이란 네 가지 원형의 속성이 있음을 깊이 생각하고 고백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에로스. 스토르게. 필리아. 아가페. 우리가 살 날 동안 가장 숭고한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 즉 아가페 사랑이 아닐까. 하지만 이 네 가지 속성을 가 가진 인간임에야.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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