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양로원’을 꿈꾸며

2019-02-08 (금) 조상숙/전도 치유 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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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벌써 9년여 전 일이다. 얼었던 주변의 땅들은 온기에 녹기 시작하며 여름같이 더운 날씨가 며칠씩 급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하고 갑자기 추워지면서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 날씨마저 중심을 못 잡고 오락가락하는 봄이었다.

어느 날 커네티컷한인회에서 총무로 수고하던 교인 한 분이 전화를 걸어 “목사님 도움이 필요하니 도와 주세요”라고 절실함이 묻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이곳 커네티컷에 사시던 미국 시민권자 한 분이 한국에 있는 조카 집을 방문 하던 중에 쓰러져 반신불구가 된 채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는데, 미국으로 다시 모시고 오고 싶지만 자신이 영어도 못 하고 또 쓰러진 고모도 말을 못하는 형편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커네티컷한인회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한인회 총무 일을 맡아 보던 그 교인이 간호사 출신 여성 목사인 내가 안성맞춤인 것 같았는지 나에게 도움을 달라는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병들어 오갈 데 없는 그 처량한 노인의 속사정을 들어 보니 미국인 남편과는 사별했고 슬하에는 자식이

없다고 했다. 형제들이나 친척들은 모두 한국에 살고 있으며 그 당시 몸이 몹시 허약해져 한국에 있는 친척들은 그 노인 분을 더 이상 돌보기가 어렵게 됐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뒤 얼마 후에 마침내 그 조카라는 분이 미국 시민권자인 그 노인을 양로원에 보내달라는 영어로 번역된 편지까지 들고 그 분이 살던 이곳으로 달려 왔다.

이런 딱한 사정을 듣고 그 의지할 데 없는 가련한 노인을 돕기 시작했고, 그분이 병원에 입원했던 한 달 그리고 양노원에 입원한 지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간호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영어가 통하는 나를 보호자로 생각해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2시간 거리를 오가며 그 분을 몇 개월 동안 돌보다 보니 아예 내 집에서 같이 모시고 사는 게 수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양로원 원장과 그녀의 변호사에게 나의 이력서를 보내고 인터뷰를 거쳐 집 구조까지 검증 받고 난 뒤 그 노인을 나에게 맡기겠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그분은 이렇게 해서 결국 나의 가족으로 입양되어 함께 살게 됐다. 말로 의사소통을 못해 본인의 심정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상태였지만 5년 후에는 다시 양로원으로 보내야 한다는 변호사의 말을 알아듣고 울며불며 손짓발짓으로 미국 양로원에는 절대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며 우리랑 함께 살고 싶다는 그분의 강한 의사가 전달돼 결국 입양까지 결정된 것이었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지금 커네티컷이 바로 한인 양로원이 필요해지는 시기로 접어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문화충돌 없이 노년에 병들고 약해지면 갈수 있는 곳, 한국 책과 한인 친구들 무엇보다도 한국말로 성경을 들을 수 있고, 찬양을 부르며, 기도하며, 그리고 예배를 한국 목사가 매주 찾아 와서 들일 수 있는 영적 돌봄이 있는 그런 양로원이 이곳에서도 이제는 정말 필요해 진 것 같다.

이런 딱한 한인 노인을 위한 좋은 양로원 설립을 꿈꾸며 간절히 기도해 본다.

<조상숙/전도 치유 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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