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먼저 집어넣고

2019-02-07 (목)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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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의 사법(司法)은 엉망진창이었다. 동네 부자가 원님에게 충분한 돈을 안 준다. 괘씸한 놈이다, 먼저 체포를 해서 구치소에 가둔다. 이삼일 후에 원님이 용의자에게 문책을 한다.

“네, 이놈, 네가 네 죄를 알렸다”
“모릅니다.”
“모른다고? 그러면 내가 알도록 도마주마.”
원님이 옥졸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옥졸은 회초리를 집어 든다. 범인을 냅다 대여섯 번 후려친다. 죽을 지경으로 아프다.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가 없다. 범인은 할 수 없이 고백한다.
“이제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자는 있는 돈을 다 긁어내어 원님에게 준다.

대한민국 초기에도 한국사회의 사법은 요지경 속이었다. A가 경찰에게 찾아간다.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B가 이런 저런 나쁜 죄를 저질렀소.” 하고 고발을 한다. A 말을 듣고서 경찰은 B한테 찾아간다. B는 스스로가 죄가 있다고 생각이 들면 경찰에게 얼른 돈을 한 주먹 집어준다. 경찰은 오케이 하고 가버린다. 그런데 B가 스스로 죄가 없다고 자신하면 B는 경찰에게 돈을 안 집어준다. 경찰은 B를 잡아서 구금시킨다. 이게 이승만 시철이나 박정희 정권 때 흔히 있었던 일이다.


독재나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지금에 와서는 한국도 법치국가가 되었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나라 중에 하나다. 한국도 미국의 법 정신,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대원칙아래 검찰이나 판사들은 범인을 다루겠다고 했다. 구호는 엄청나게 좋다. 하지만 현실은 아주 암담하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직 변호사 코헨(Michael Cohen)이 재판을 받고 있는 동안, 구금되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서 재판을 받았다. 지난 12월(2018)에 3년 징역형을 받았다. 그리고 3월6일에 영창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다. 이게 미국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재판정에서 죄가 있다고 판결이 나기 전에, 이 사람이 진짜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전에, 마치 죄가 있는 것처럼 구금시켜버린다. 한국의 박근혜 전직 대통령, 이명박 전직 대통령, 그리고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도 재판도 받기 전에 집어넣어버렸다. 이유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거인멸의 우려? 그렇다면 구금시켜놓고 범죄 증거를 수집하겠다는 말인가? 범죄 증거가 확인된 후에 기소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죄가 있는지 없는지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죄가 있다고 재판결과가 나오면 그 때 구금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야 '10명의 법인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이 성립되는 것이다.
혐의만 받고 있는 용의자를 구속시켜 놓았으면, 검찰의 입장에서는, 한번 구치소에 집어넣었으니까, 집어넣었다는 것을 정당화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무리하게 수사를 할 수도 있다. 없는 죄도 있다고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한국의 현재 사법은 “한명의 범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10명의 선량한 사람을 잡아가두는” 식이다.

미국의 주·시·카운티에서는 검사장이 주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다. 검사들은 적어도 주민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민들을 무서워하고 우대해준다. 그런데 한국의 검사들은 법무부에 소속돼있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검사들은 주민들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도 도·시·군에서는 검사장을 투표로서 선출했으면 좋겠다.
남한은 엄연히 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란 민중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시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인데, 혐의가 있다고 해서, 검찰은 시민을 구속시켜버린다. 혐의만으로 시민을 구금시켜버린다면, 대한민국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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