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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태아’ 80~90% 정상 자세로 바꿀 수 있다

2019-01-22 (화)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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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가 손을 써 태아 엉덩이를 위로, 머리를 골반쪽 돌리는 ‘역아회전술’

▶ 만삭 때 성공하면 자연분만 가능, 미·영국선 제왕절개 전 적극 활용

‘거꾸로 태아’ 80~90% 정상 자세로 바꿀 수 있다
‘거꾸로 태아’ 80~90% 정상 자세로 바꿀 수 있다

김광준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초음파 검사로 태아의 상태를 살펴보며 임신부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앙대병원>


# 초산인 A씨는 임신 28주부터 36주까지 태아의 머리가 자궁 위쪽에, 엉덩이가 아래쪽에 있는 역아(逆兒) 상태여서 이러다가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됐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인터넷을 검색해 의사가 손을 써서 태아의 자세를 반대로, 즉 정상으로 돌려주는 ‘역아회전술’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원장은 “초산이고 태아 엉덩이가 엄마의 골반에 끼어 있어 성공확률이 50%쯤 될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1분 만에 아기 머리가 아래에 있는 정상 자세로 바뀌었다. 태아는 이 상태를 유지한 채 임신 38주 5일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 첫째를 자연분만한 데 이어 둘째를 가진 B씨는 정상 자세였던 아기가 임신 35주에 역아 상태가 됐다고 해 깜짝 놀랐다. 37주 이후 역아회전술을 시도해보자는 권고를 받았지만 막판에 자연의 섭리로 돌아줄까 싶어 38주 3일로 예약을 잡았다. 그런데 직접 아기 자세를 바꿔 보겠다며 너무 만져서인지 37주 4일 아침식사를 한 뒤 진통이 왔다. 병원에 전화했더니 “당장 역아회전술을 받지 않으면 응급수술(제왕절개)을 해야 한다”고 해 서둘러 갔다.

의사는 “둘째이고 양수도 적당해 가능할 것 같다”며 8시간 금식을 이유로 오후4시가 넘어 자궁수축억제제와 무통주사를 놓고 5시쯤 시술에 들어갔다. 의사가 강하게 힘을 줘 태아를 돌릴 때는 꽤 아팠지만 10여분 만에 성공한 듯했다. 그런데 한쪽 다리가 골반 쪽에 끼어 머리 옆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머리를 이동시키면서 발을 빼는 데 10여분이 또 걸렸다. 이후 자궁이 점차 열리면서 그날 밤 자연분만으로 둘째를 낳았다. 극적인 역아회전술 덕분에 제왕절개를 피할 수 있었던 셈이다.


# 초산인 C씨는 태아가 임신 28주부터 역아 상태여서 걱정이 돼 고양이 자세도 많이 취해봤지만 33주가 돼서도 바뀌지 않았다. 다니던 산부인과 원장이 “태아가 엉덩이만 아래쪽에 있고 두 발을 머리 쪽으로 쭉 뻗고 있는데 이런 자세는 잘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고민 끝에 인터넷을 검색해 역아회전술을 하는 산부인과에 전화해 상담했더니 “드물지만 역아회전술을 하다 진통이 올 수 있으므로 36주 이후에 가능하다”고 해 36주차에 진료 예약을 했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 결과 정상 자세로 쉽게 돌릴 수 있지만 목에 탯줄이 두 번 감겨 위험해질 수 있다”며 제왕절개를 권했다. 자연분만을 원했던 C씨는 결국 수술로 아기를 낳았다.

출산을 앞둔 만삭(만 37주 이후) 태아의 머리는 산모의 뱃속에서 아래 쪽에 있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4% 안팎의 태아는 머리가 위쪽에, 엉덩이(둔부·臀部)가 아래쪽에 있는 둔위(臀位), 즉 역아 자세를 보인다. 이 상태에서 자연분만을 하면 태아의 발이나 엉덩이가 먼저 나와 둘레가 가장 큰 머리가 엄마의 골반에 걸려 사망할 수 있다. 어깨부위가 걸려 신경이 파열돼 출산 후 팔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국내 대다수 산부인과에서는 제왕절개를 권한다.

하지만 산모들 사이에서 역아 태아를 정상적인 자세로 돌려놓는 역아회전술(둔위교정술)을 선택해 자연분만을 시도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시술은 의사가 만삭 산모의 하복부를 손으로 마사지하듯 밀어 올리면서 태아를 움직여 머리가 아래쪽에 있는 두위(頭位)로 유도하는 방법이다. 초음파기기와 심박동감시장치 등을 활용해 양수의 양, 태아의 위치·방향·건강상태를 확인하면서 진행한다. 태반의 기능이 떨어져 태아가 산소·영양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좁은 골반에 태아의 엉덩이가 꽉 낀 경우 태아가 움직이려 하지 않고 심박동 변화도 거의 없다. 이런 태아를 무리하게 움직이려고 하면 매우 드물지만 태반박리·출혈 등이 생길 수 있다. 반면 건강한 태아는 조금만 밀어줘도 잘 움직이고 심박동 변화도 큰 편이다.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김광준 교수의 경우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병원에서 연수할 때 이 시술법을 배워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1,000건 넘게 시술했다. 누적 성공률은 83.9%(초산 78.4%, 둘째 이하 89.7%)로 매우 높은 편이다. 김 교수는 “둘째나 셋째를 가진 경우 엄마의 배가 말랑말랑해 역아 상태의 태아를 손으로 잠깐 밀면 정상 자세로 쉽게 돌아가지만 초산이나 양수가 거의 없는 경우에는 5~10분 이상 힘을 잔뜩 써야 돌아가거나 성공률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역아회전술을 배운 산부인과 의사가 적은데다 제왕절개수술비가 외국에 비해 매우 저렴해 보급 단계다. 김 교수는 “둔위교정술은 의학 교과서나 외국 학회 진료지침에 명시된 시술법으로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제왕절개 수술에 앞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그런 풍토가 빨리 조성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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