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움과 감사

2019-01-22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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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료원 간호사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었다. 작년 이맘때는 아산병원 간호사가 목숨을 끊었다. 그때도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직장 내의 '태움'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한국만의 문제일까? 우연히 8년 전 글을 봤다. 뉴욕타임스에 나온 “간호사가 왕따 당할 때”라는 기사에 의하면 미국도 신규간호사의 60%가 중상모략, 협박, 방해 등으로 6개월 이내 병원을 그만둔다고 했다.

내가 한국 모교의 대학 병원에서 실습할 때 별다른 차별을 못 느꼈다. 모교 출신이라는 것에서 난 이미 '갑'이었다. 졸업 후 병원이 아닌 회사에 입사했다. 의료지식을 요구하는 회사라 간호사인 나는 신입임에도 대접을 받았다. 오히려 갓 입사한 내가 의료용어를 모른다고 과장을 태웠다.


회사에 적응할 때쯤 미국에 왔다. 오버타임을 강요하지 않고, 일한 만큼 돈을 벌고, 한국식 선후배 문화와 상하계층이 없는 천국으로 알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겐 '태움' 대신 '인종차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종차별의 시작은 보통 언어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영어 발음과 간호지식을 매번 시험 당했다. 그래도 영주권 때문에 버텨야 해서 매일 일하는 시간을 공짜 회화 수업으로 생각했다. 돈 받으며 영어 공부한다니 차별을 견디기 쉬웠다.

그렇게 어려움을 벗어나나 했더니 이젠 필리핀 간호사들에게 '은따-은근히 왕따'를 당했다. 내가 벌어서 내가 쓴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필리핀 간호사들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에 투잡을 가지고 번 돈의 대부분 송금을 했다. 그런 그들에게 난 너무 부유해 보였다. 질투가 심해질 무렵 때마침 불어온 K-drama의 열풍이 날 살렸다.

그 뒤에 뉴욕에 왔다. 인종팟이라는 이곳은 좀 더 이해심이 많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환자들의 인종차별은 항상 있고 태움은 신입에게 항상 따라다녔다. 다행히도 날 태우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잘 못 알아들어서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항상 환자의 말과 환자와 관련된 의학용어에 집중하다 보니 동료간호사들과의 일상 잡담은 그냥 대충 흘려들었다. 태움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받는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은따도 태움도 존재하질 않게 되었다.

게다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날 보호하기 위해 항상 아부와 칭찬을 생활화했다. 나만의 특기인 '힘써서 발 빠르게 일하기'를 살려 병동에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덕분에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의 태움을 피했다. 그리고 어쩌다 듣는 환자의 '고맙다'라는 말에 힘냈다. 사실 환자가 알아준다는 것이 간호사에겐 가장 큰 격려였다.

그래서 어딜 가도 자주 '고맙습니다.'란 말을 한다. 수퍼마켓에서 시식할 때도, 운전 중에도 혹 나의 감사가 그 사람의 하루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Thank you'에 진심을 담는다.

오늘도 일하는 모든 간호사에게 '감사'라는 말이 전해져 힘든 하루를 버틸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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