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의 시인

2019-01-19 (토) 최연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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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워싱턴의 거리는 기차로 세 시간,비행기로 한 시간,자동차로 네시간. 그러나 사람과 사람사이엔 그보다 더 멀 수도 있고 더 가까울 수도 있다.젊은 나이에 자주 내왕하던 뉴욕이 나이들면서 멀어져 가고 있다.이계향 여사가 뉴욕 초대 문인회장시절에는 문인회 원고청탁도 받았고 함께 미시간대학 한국학 회의에 참석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내 또래 김송희 시인,나보다 아래 최정자 시인과의 교류가 있었지만 아득해지고 있다.

오랜만에 최정자 시인과 연락이 닿아 그의 최근 시집과 산문집을 선물로 받아 읽게 되었다.다시 뉴욕이 가까워졌다.그러나 이계향 여사도 이 세상을 떠나셨고,박영숙 시인은 양로원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그만큼 세월이 갔다고 한탄하기 보다 고인의 명복을 늦게라도 빌고 살아있는 자의 남은 생을 축도하게 된다. 가는 세월이야 붙들 수 없지만 남은 세월을 더 의미있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는다.

2017년에 나온 시집‘ ‘별사탕 속의 유리새’ 안에서 1970년대 초반 가깝게 냈던 박영숙 시인이 양로원에 있다는 시를 읽게 되었다. 로스앤젤리스에 사는 황갑주 형이 재미시인선을 펴내는데 내가 서문을 썼는데 나이가 가장 어린 내가 쓴 서문이 멋있었다고 칭찬한 분이었다. 나는 그때 버지니아남부 노호크 올드 도미니언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고 뉴욕에 가면 우리는 선후배도 나이도 잊고 만나 문학을 논했었다.


이 시집에서도 나는 최정자다운 시편들은 맨하탄 소식, 연작시와 후반부에 들어간 기명 시들이라고 생각하게되었다. 아프리카 밀림 속 동물의 왕국을 재현한 맨하탄 그 안에 사자도, 악어도, 고릴라도 살고 있지만 착한 노루, 토끼 같은 초식동물도 살고 있는 풍경화. 맨하탄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는 뉴욕 시인이 자랑스럽다.그가 만난 사람들을 한편의 시로 남긴다면 최정자의 시집은 그 속에 남아있는 사람들만으로 오래 살아있을 것이다.인생은 짧지만 시는 길지 않은가? 나도 최정자도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산문집 ‘멀미 없는 세상’ 속에서 나는 최정자의 시론이나 평문을 대하게되었고 특히 그 속에서 이계향 여사의 미모와 문학세계를 다시 보게되어 반가웠고 고마웠다.천상병의 10주기 추모행사를 뉴욕에서 연 최정자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내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미주문학상을 제정한 연유와 근사한 행사였으리라.
최정자 시인의 문학론에 영어로 쓰는 한인 문필가들과의 갈등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대목이다.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문학세계는 한글과 영어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에.

영어로 성공한 문학은 1.5세대나 2세대에 기대할 수 있지만 1세대의 아픔이 가장 절실한 문학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에게 지면을 허락하다 보면 미국문예지에 나올만한 작품으로 승화하지 않을까? 다시 이어진 뉴욕 시인과의 인연을 감사한다.
 

<최연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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