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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해와 융통성

2019-01-05 (토)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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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融通性/flexibility/adaptability). 세상을 사는데 참으로 필요한 덕성이다. "저 사람은 융통성이 없어!“ 욕은 아니다. 칭찬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어쩌면 비하하는 발언이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 고지식한 사람이다. 고지식한 사람이 다 나쁜 건 아니다. 어떤 경우와 상황에선 고지식이 더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데 ‘고지식함’은 방해꾼이 된다. 피스 메이커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트러블 메이커가 될 수 있다. 고지식함은 고집과 연관된다. 고집이 센 사람. 같이 하기 힘들다. 사사건건 자기주장, 자기 고집대로 하려는 사람. 어떻게 사귀겠나. 친구 되기도 힘들다. 같이 일하기도 힘들어진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건 펴면 되나 부러진 건 펼 수가 없다. 갈대가 부러지는 것 봤나. 제아무리 강한 폭풍이 몰아쳐도 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 폭풍이 치는 대로 갈대는 휘어진다. 이리불면 이리로. 저리불면 저리로.


산에 갈 때마다 보는 풍경. 수십 미터 되는 알음들이 나무가 부러져 썩어가는 모습이다. 한 두 개가 아니다. 수백, 수천 개다. 어떤 나무는 뿌리 채 뽑아져 있는 것도 있다. 폭풍이 오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 강하게 버티고 서 있던 나무들이 부러진 거다. 강한 건 부러진다. 사람도 마찬가지. 고집 센 사람, 언젠가 부러진다.

융통성과 아부(阿附/flattery). 혹은 아첨(阿諂). 아부와 아첨은 융통성이 아니다. 알랑방귀다. 대통령이 방귀를 뀌니, “대통령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아부다. 융통성을 발휘하려고 하는 아부는 금물. 해서는 안 된다. 어리석은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면 잘린다. 아부, 아첨하는 부하만 살아남는다. 트럼프를 보면 예가 될 수 있다.

이리저리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 갈대. 그래도 갈대는 중심이 있다. 그러니 태풍이 몰아친 후 다시 꼿꼿이 서서 햇빛을 만끽하는 거다. 아부하는 자. 중심이 없다. 살아남기 위한 추한 모습만이 있다. 그러나 융통성에는 갈대처럼 중심이 있다. 중심이 없는 융통성은 바른 융통성이 아니다. 아부와 아첨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융통성과 여유로움. 여유로움이 없는 융통성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어야 융통성이 발휘된다. 여유로움이란 느긋함, 곧 낙천이다. 느긋하게 세상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 느긋함은 습관으로 길들여져야만 한다. 성질(temper)을 내지 않는 습관이 필수요건이다.

사람 몸 중에 가장 부드러운 부위는 어디일까. 여러 군데가 있겠다. 그 중에서도 혀가 아닐까. 입 속의 혀. 길게 빼면 길어지고 짧게 모으면 짧아진다. 혀는 맛을 느끼게 한다. 안 먹으면 죽어야 하는 인생. 먹어야 산다. 먹으면서도 맛을 느껴야 함은 모두 혀의 덕분이다. 그뿐 아니다. 혀는 말을 하게 한다. 혀의 융통성이다.

말과 맛의 융통성을 가지고 인간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혀. 하지만 아부와 아첨도 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혀에는 아부와 융통성이 함께 한다. 혀를 통해 음식은 위로 넘어간다. 음식을 씹는 건 이빨. 이빨은 강하다. 그래서 부러지거나 빠진다. 그러나 혀는 죽을 때까지 그 부드러움을 유지한다. 그러니 이빨보다 강하다.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한 가지 길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여가 가지 길을 모색하며 최선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합리적이다. 이기(利己)적이 아닌 이타(利他)적이다. 모두를 생각한다. 그리고 높고, 넓고, 깊이 볼 줄 아는 철학이 있다. 반면 심플(simple)하게 주어진 상황과 생(生)과 세상 자체를 낙관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2019년. 황금돼지해다. 한 해 동안 융통성으로, 아니 금년뿐만 아니라 남은 생 자체를 융통성을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느긋함이란 물질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음에서 먼저 생긴다.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갈대와 같아도 폭풍을 이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모든 이에게 함께하길 기대해 본다.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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