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탄종아 멀리 울려 퍼져라

2018-12-21 (금)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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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속에 재봉틀 밟는 아낙네에도, 저물도록 비늘 벗기는 생선가게에도, 빨래처럼 늘어진 세탁소에도, 희망의 성탄종아 힘차게 울리거라. 아파트에 갇혀 고향 그리는 노인에게도, 돈에 눈이 어두워진 아비에게 소외당한 어린것들에게도, 평화의 성탄종아, 고루고루 울려라.

몸도 마음도 지친 병실에도, 하늘 보고 한숨짓는 실직자에게도, 이 일 저 일 다 실패한 실업자에도, 축복의 성탄종아 힘차게 울리거라. 죄를 짓고 번민하는 자에게도, 마음이 콩알만 한 불법체류자에게도, 내일을 알리는 성탄종아 우렁차게 울려라.

불화로 틈이 생긴 부부에게도, 등 돌리고 입담은 친구 사이에도,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보려는 가련한 도망자들에게도, 새 출발의 성탄종아 우렁차게 울려라. 황금을 찾아 삶의 방향을 잃은 자에게도, 시간에 쫓겨 삶의 의미를 잃은 자에게도, 욕심에 눌려 삶의 표준을 잃은 자에게도, 사랑의 성탄종아 골고루 울려 퍼져라.


모르면서 다 아는 척 착각하는 우둔한 자에게도, 바람을 잡고도 성공이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자에게도, 맑은 성탄종아 우렁차게 울려라. 외로우면서도 껄껄대는 가련한 자에게도 따듯한 성탄종아 포근하게 울려다오.

예수의 탄생은 선물을 주고 받으며 떠들썩한 요즘의 크리스마스와는 아주 달리 참으로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이다. 만삭(滿朔)의 임산부(姙産婦) 마리아는 집집마다 거절당하고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아 짐승의 밥통인 구유에 아기를 뉘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얼마 전에 분명히 들었던 하늘의 음성을 기억하였다.

“마리아야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누가복음 1:30-31)

아기를 위한 자장가는 나귀의 울음소리와 바람소리뿐, 방문객이라고는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몇 명이었다.

그런 춥고 쓸쓸한 곳에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잘 차려입은 학자 몇 사람이 방문한 것이다. 그들을 동방박사(東方博士)라고 칭한 것을 보면 아마도 아라비아쯤에서 온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었을 것이다. 별 전문가들의 눈에도 특이하게 크고 밝은 별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그 별빛을 따라 왔다니까 천문학자가 아니면 옛 철학자, 혹은 어느 나라의 임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예물인 황금 유향(乳香) 몰약(沒藥)은 모두 값비싼 물건들이니 돈 많은 부유층 인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기다리자. 크리스마스는 문밖에 오고 있다. 인종의 대립과 분노가 있는 장소에, 집 없는 사람들이 새우잠을 자는 수용소에, 말 상대 없는 외로운 노인들이 앉아 있는 벤치에, 크리스마스는 어김없이 오고 있다.

그 분의 소식을 듣지 못하도록 백성의 귀를 막는 나라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오고 있다. 오염된 바다와 오염된 하천과 뜨거워지는 대지에도 크리스마스는 금년에도 오고 있다. 평화의 소식을 안고 그 거룩한 아기는 그대 가슴에 태어날 것이다. 기다리자. 불안을 털고 걱정을 다 버리고 두려움도 눌러 잠재우고 아기 예수를 기다리자.

온유하신 아기를 생각하며 아내에게 더 많은 미소를, 남편에게 더 많은 관심을, 동기와 이웃에게 더 많은 눈길을 돌리고, 아이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결심하는 크리스마스가 된다면 그 것이 금년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천사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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