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움과 나눔의 크리스마스

2018-12-22 (토)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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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 보는 하얀 크리스마스/ 올 해도 다시 돌아와/ 방울 소리 들리는/ 흰 눈 쌓인 거리로 썰매는 간다/ 꿈속에 보는 하얀 크리스마스/ 흰 눈 쌓인 카드에/ 적어 보내는 메리 크리스마스/ 평안하리 축복받는 거룩한 이 밤” 어빙 벌린(Irving Berlin)이 1942년 작곡해 빙 크로스비가 노래한 크리스마스 노래의 부분이다.

2018년 크리스마스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예수 그리스도, 아니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날, 크리스마스다. 매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맞이하는 사람에 따라 색깔이 틀리다. 하얀 크리스마스. 까만 크리스마스. 하얀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즐거워서 맞이하는 그런 크리스마스. 그렇다면 블랙 크리스마스는 어떤 건가.

사는 동네에 몇 안 되는 노숙자와 구걸하는 사람이 있다. 한 노숙자는 동네 전철 기둥 밑에 잠자리가 있다. 차로 그를 지나칠 때 마다 집사람과 나누는 대화다. “저 사람은 다른 건 몰라도 대변보는 건 어떻게 해결할까” 또 “샤워는 어디서 할까” 아마 대변은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 해결할 것 같다. 거긴 화장실이 오픈돼 있다.


샤워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몸이 얼마나 근지러울까. 아마 이(lice)도 많이 있을 거다. 그 노숙자는 구걸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먹는 것은.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하겠지. 그래도 그는 살아간다. 그에게 아기 예수 탄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에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는 하얀 색이 아닌 블랙, 즉 까만 색깔이 아닐까.

“오늘도 아기는 오시네/ 눈이 내리는 마을에 오시네. 우리들 오늘 이 세계/ 눌린 자와 갇힌 자/ 빈곤과 질병과 무지에 시달리는 자/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 진리와 그 의를 위해 피 흘리는 자/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자를 위해 오시네” 박두진 시인의 시 ‘아기 예수 나심’의 부분이다.

그래, 시인의 말처럼 아기 예수 오심의 의미는 모두 잘 안다. 눌린 자와 갇힌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빈곤과 질병과 무지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해. 의와 진리를 위해 싸우는 자를 도와주기 위해. 순수한 마음, 화평을 외치는 청결한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오셨음을 잘 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아기 예수 태어난 지 2000년. 2000년 전과 지금. 인간의 욕심은 그대로이다. 세상의 돌아감도 그대로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격은 점점 벌어져 가고. 그러니 빈곤이 가실 날이 없다. 질병과 빈곤은 형제 같은 거. 미국시민들이 하얀 크리스마스를 즐거이 부를 때. 아기와 강제 떨어진 불법 입국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주여 지난 날 헛되이 보낸 성탄절을 용서하시고/ 올해는 성탄의 의미를 바로 새기게 하소서/ 왕궁이 아닌 누추한 말구유에 임하신 까닭을 알게 하소서/ 헛된 욕망을 비우고/ 가난한 마음이 되어/ 아기 예수님 모실/ 정결한 말구유 하나 마련하게 하소서/ 비움과 나눔과 겸허한 마음으로” 진장춘시인의 ‘성탄절의 기도’ 부분이다.

동네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지금까지 한 푼도 주어 본 적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멀쩡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어야 했을까. 아니, 앞으로는 주어야만 될까. 이번 크리스마스에 그 사람이 또 길에서 구걸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멀쩡해 보이더라도 주어야겠지. 그래 작은 것이라도 주는 것이 좋겠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뉴욕 지역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닌 것 같다. 눈이 내릴 예정이 없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는 좋은 풍경이다. 그러나 운전하는 사람, 집을 가진 사람들에겐 버거울 수 있다. 미끄러운 눈길, 운전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염려가 있다.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려면 얼마나 고단할까. 그래도 하얀 눈이면 좋겠지.

진 시인의 말처럼 비움과 나눔의 겸허한 마음으로 맞이할 성탄이 되면 좋겠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 블랙 크리스마스로 보낼 소외된 사람들. 그들에게도 아기 예수 오심의 의미가 따뜻하게 다가가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돈과 욕심이 담긴 성탄 트리가 아닌 순수와 사랑이 담긴 성탄트리 앞에서 맞이하면 더욱 좋겠지.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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