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퍽 ‘퍼서널한’ 한 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본인과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린 아내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치매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어려움을 당하는 가족들이 많으나 무슨 부끄러운 병인양, 과거 한센병처럼 쉬쉬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병이란 누구의 죄로 인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도 눈 먼 사람은 자기 죄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하시지 아니 하였는가? (요한 9장 3절)
3년 전에 아내는 급작히 고열로 사흘 동안을 코마 상태에서 생사를 헤맸다. 나는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님 화세를 지금 데려가시면 안됩니다!”고.
감사하게도 나흘만에 깨어났으나, 먹지도 마시지도 일어나지도 못한 채 재활원에서 100일을 지내야 했다. 나는 하루 종일 그의 방에서 책상 하나 놓고 간호사들이 소홀히 돌볼 까봐 감독하며 아내를 위로했다. 아내는 다행히 말은 잘했고 음식은 먹지 못했으므로 튜브로 직접 공급하여 (tube feeding) 건강을 유지했다.
그렇게 100일이 지나니까 보험이 다 됐다고 집으로 가라고 해 나는 다섯명 간호사가 하던 일을 배워서 집에서 한 달동안 직접 돌봤다. 그 결과 한 달만에 밥도 먹고 일어나 종종 걸음으로 집에서는 걸을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치매가 시작 되었다.
기억력이 없어지고 가끔 환상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엄마를 찾더니 이제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아빠, 아버지, 할아버지 등 여러 가지로 부르지만 나를 무엇보다 엄마로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어린아이를 돌보듯 늘 함께 있어야 한다. 밖에 나갈 때는 항상 휠체어에 태워 같이 데리고 다닌다. 사람들은 나에게 “참 힘드시겠어요” 하고 동정하나 나는 마음 속으로 55년 전에 약속한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사랑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 뿐이라고 생각 한다.
교회에 나가면 우리가 개척하고 12년이나 목회한 교회의 교인들은 교회의 ‘엄마’ 노릇을 하던 옛 사모를 껴안으며 안타까워한다.
아내가 가끔 “엄마 어디 가지 마, 난 엄마 없으면 못살아” 하면 “걱정 마 내가 당신 곁에 영원히 함께 있을테니” 하고 안심 시킨다. 될 수 있으면 하루에 두 번씩 차를 태우고 밖에 나간다. 아내는 “나는 엄마하고 차타는 게 제일 좋아” 하며 좋아한다.
오래전 아이들을 기를 때 애들이 차 타기를 좋아하던 생각이 난다. 아내는 차 타고 나가서 점심이나 저녁은 버거킹이나 웬디에 가서 간단한 음식을 사먹는 것을 좋아 한다.
벌써 현직에서 은퇴 한지 14년 되었으니 하는 일은 집에서 글이나 쓰고 가끔 목사님들이 초대하면 설교나 축도를 하는 정도의 일 밖엔 없다. 그래서 집에서 아내 돌보는 일이 나의 ‘풀타임 잡’이다.
내가 휠체어를 밀면, 아내는 말한다.“당신 힘들지, 내가 좀 밀까? 당신 타. ”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냐, 하나도 힘 안들고 영광으로 생각하니 걱정마” 하고 안심시키고 웃기려고 농담도 많이 한다.
얼마 전에, 아내는 한밤중에 일어나 느닷없이. “김해종이 어디 갔어?” 라고 물어 깜짝 놀랐다. “여기 있지 않아!” 하니까 “당신은 엄마지. ” 하고 우기는 바람에 자다 말고 일어나 벽에 걸어 놓은 사진들…결혼사진 부터 가족사진까지 보여 주며, 옛날이야기로 부터 현재까지 한 시간을 이야기해 주고 잠을 재운일이 있다.
오늘 새벽에도 세시에 깨서 “엄마, 나 배고파” 해서 군고구마와 바나나를 먹이고 재워놓고 이 글을 쓴다.
성탄은 엄마의 이야기다. 아들을 낳아 말구유에 누인 엄마, 그림자 같이 아들 예수를 따라 다니던 엄마, 그리고 십자가 밑에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던 엄마! 미켈란젤로는 그 엄마, 마리아의 모습을 ‘피에타’ 라는 대리석 조각 속에 담아 영원한 엄마의 모습으로 남겨주었다. 성탄, 예수의 탄생은 엄마로 시작하여 엄마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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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종/전 연합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