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티쿤올람’

2018-12-19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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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15세 소녀의 투병기를 지켜보다가 울었다. 문득 건강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거룩한 부담이다. 사명임을 깨닫는다.

곰팡이 나는 지하교회, 서너명 교인이 전부인 셋방교회에서 월세 내는 날을 두려워하는 미 자립교회가 존재하는 한, 더 이상 높고 큰 건물은 축복이 아니다. 부담이다.

뼈까지 달라붙는 쇠꼬챙이 같은 마른 몸을 하고 목마른 눈초리로 쳐다보는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저 어린 것들이 있는 한,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는 것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부끄러움이다.


잘 먹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할 일이 아니다. 잘 먹게 되어 죄송하다고, 내가 가진 걸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빚을 지고 살아왔다. 이 빚을 갚기 위해 보석을 만들고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으로 내 영혼을 맑게 헹구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가슴 아파 울고 있는 교우가 있는 한, 복이 아니다. 남들보다 앞서고 칭찬거리가 많은 게 자랑이 아니다. 입 다물고 겸손히 받은바 은혜를 기억해야 할 일이다.“

지인이 최근 보내준 ‘축복과 사명’이라는 제하의 이 글은 한 해를 되돌아보며 연말을 보내는 우리들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리고 사는 건 많은데 주위에서 고통받고 힘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 되면 늘 느끼는 것은 한해를 잘 지내온 데 대한 감사함이다. 폐부를 찌르는 윗글을 접하면서 ‘축복과 사명’을 바꾸어 ‘감사와 나눔’으로 생각하며 얼마 남지 않은 연말을 좀 더 의미 있는 날로 마감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흥청거리는 연말 분위기에 들떠 우리가 선물을 주고받기에만 열중하고 파티를 찾아다니며 먹고 마시고 춤추고만 할 일이 아니다. 나보다 못한 이웃도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연로한 노년층이 늘어나면서 건강을 잃고 고생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또 심한 경제난으로 비즈니스를 접거나 실직상태에 놓인 한인들도 많이 있다. 소외된 상태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주위에 없지 않다.


특히 한인 자영업자들의 마음은 더더욱 무거운 상태다. “미국의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내년부터 경기가 점점 침체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는 기사를 월스트릿저널이 벌써부터 내놓고 있는 이유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 마음만은 넉넉하고 훈훈해지자. 이는 어려운 중에도 힘겨운 이웃을 생각하고 나눔을 실천해보는 데서 시작된다.

유대인들은 사랑이 담긴 나눔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주위와 사회, 나아가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티쿤올람(Tikun ol lam)'의 사명이다.

유대인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나눔의 선행을 생활에서 배운다고 한다. 청소나 설거지 등 집안 일 돕기, 친구숙제 돕기, 자라면서 병원이나 양로원을 찾아 나눔의 이웃사랑 등을 실천해가며 사고나 혹은 다른 이유로 어려움에 처한 동포들을 돕고 챙겨주고 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뤄나가기 위함이다.

장사꾼들은 팔다 남은 음식이나 제품을 내어놓고 힘겨운 동포들이 가져가 먹고 쓰게 함으로써 최소한의 생활유지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대인의 이런 선행은 자선이 아니라 정의롭고 옳은 일로써 마땅히 그 의무를 다한다는 것, 이것이 유대인의 나눔 철학 기본 정신이라고 한다. 미국의 총인구중 2%밖에 안 되는 이들이 전 세계를 주무르는 민족으로 우뚝 서게 된 것도 다 이런 나눔의 정신에서 기인한다.

이번 연말에는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생각하며 나보다 못한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유명한 대중연설가 지그 지글러는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은 아직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우리도 티쿤올람의 정신을 본받아 나눔을 하게 되면 마음이 행복해져 연말을 더욱 풍성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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