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을 잃어가는 캐러밴

2018-12-05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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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해의 마지막인 12월이 되면서 벌써부터 미국의 가정들이 성탄절을 앞두고 한 집 두 집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며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성탄절은 사람들이 보통 흥청이며 즐기고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며 지구상에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받는 약자들을 도우라는 예수 사랑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날이다.

해마다 성탄절을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하게 보내는 미국사회 바로 국경 저 너머에는 지금 미국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애타게 지내는 무리들이 있다. 바로 극심한 경제적 빈곤과 무서운 조직범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해온 캐러밴 행렬이다.

주로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으로부터 무작정 살기 위한 희망만을 가지고 미국을 향해 온 무리들이다. 유엔에 따르면 이들이 살고 있던 나라들은 2015년 온두라스에서 살인범죄로 사망한 사람이 1만명중 평균, 63.74명, 엘살바도르는 108.64명일 정도로 위험한 나라들이다.


“ 제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어렵지만 원하는 것을 위해 끝가지 투쟁하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꼭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저희 같은 사람들... 살고 싶은 사람들 말이에요.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갈구하고 있지만 이들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마음은 갈수록 싸늘하기만 하다. 국경의 빗장을 굳건히 걸어 잠그고 절대 열어줄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임신부와 아이들도 마다하고 최루가스를 뿌리고, 최루탄을 쏘며 충돌한 캐러밴 42명을 체포하는 가하면, 오히려 국경을 폐쇄할 것이라며 군 무력 사용까지 허용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어느 나라든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자들을 규탄하며 그 나라 국민의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자유와 평화, 인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모든 가치를 부정하며 무조건 문부터 꽁꽁 걸어 잠그고 있다.
최근 미국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중국, 베네수엘라, 쿠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반인도적 국가들이 이사회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인권에 그만큼 비중을 두는 미국이 캐러밴에 막가는 처사를 보이는 건 강국답지 않은 태도가 아닐까.

부끄럽게도 인권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미국이 2001년에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이사국 자격을 상실한 적이 있다. 그만큼 대외정책에서 국제사회의 불만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또 미국이 캐러밴을 너무 홀대해 국제사회로부터 비인도적이라는 오명을 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국경밖에서 미국의 따뜻한 선물이 혹시나 전달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기다리는 캐러밴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 특단의 대책은 없을까. 영하의 추위에 이들이 희망을 포기하고 절망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트럼프가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찾아든 이민자들이 모여 하나의 대륙에서 발전해온 나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메리카 대륙은 본래 1400년대만 해도 인디언과 에스키모 외에는 어느 민족도 없었다. 약 2,000만명에 이르는 다양한 부족의 아메리칸 인디언이 수백개의 부족을 이루며 각지 다른 말과 생활습관을 지니며 살아왔다.


이들의 영역에 영국을 포함, 세계 각국으로부터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새 삶을 목표로 꿈을 안고 속속 밀려들어 이룬 나라가 바로 오늘의 미국이다.

1776년 미국의 독립 당시 인구가 불과 300만에 불과하던 인구가 오늘날 몇백배로 늘어 거대한 인구를 지닌 나라로 발전해 왔다. 이것은 바로 캐러밴처럼 몰려든 이민자의 행렬이 일군 결과다. 트럼프는 미국이 지닌 이런 소중한 가치를 훼손하고 국가의 명예와 위상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캐러밴의 꿈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사랑이 강조되는 12월에 가느다란 희망을 가져본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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