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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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시한폭탄 ‘PTSD’치료 의지가 중요

2018-12-04 (화) 정이온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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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가 말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 충격적 사건 후 그 기억 떠올리는 상황되면, 극심한 불안·우울증·망상증 증세 나타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사건, 심각한 부상, 자연재해 등 외상성 사건들을 경험했거나 목격했다고 해서 꼭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이하 PTSD)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정신과적 질환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는 “우울증, 피해망상증, PTSD, 공황장애, 주의산만증 등이 현대인들에게 부쩍 증가하고 있는 정신과적 문제들이다. 이 중에서 PTSD는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이지만 잘 모르고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와의 인터뷰를 통해 PTSD에 대해 알아보았다.

# PTSD라는 것이 뭔가?


“PTSD는 진짜 죽을 것 같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사고, 테러, 성폭력 노출 등 심각한 사건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을 느끼고 나중에도 다시 겪게 될 것 같은 정신적 고통을 느끼며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이전에는 불안 장애의 한 유형에 속했지만 미국정신의학회(APA)가 2013년 다섯 번째 개정한 ‘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DSM-5)에서는 트라우마 또는 스트레스 관련 장애(stress related disorder)에 따로 구분됐다. 이전에는 사고를 당했을 때 극심한 공포심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진단에 들어 있었지만, DSM-5에서는 빠졌다. 전쟁을 경험한 군인 또는 성폭행 당한 피해자가 당시 상황에서는 극도의 공포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이나 그 가족이 끔찍한 장면을 본 후 PTSD가 생길 수도 있다.

PTSD 이전에는 ‘셸쇼크’(Shell Shock)란 말이 있었다. 전쟁이 났을 때 폭탄이 터지면 똑같은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참호 속에 들어가면 폭탄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심한 불안에 빠지고 신체적으로도 마비가 되는 부분들이 생긴다. ‘셸쇼크’는 1차 대전 후 군인들의 PTSD 유형을 기술하는 말로 나왔다가 베트남전 이후로 PTSD가 뚜렷하게 환자도 많아졌고, 재향군인의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현재는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진단이 쉽지 않은 것 같은데?

“꼭 재향군인 뿐 아니라 교통사고, 비행기 사고, 자동차 사고, 강도, 강간, 산업재해 등을 당했다거나 위험한 직장에 있는 경우 PTSD 진단이 나오는 사례들도 있다. 진단을 내릴 때는 의사가 임의로 혹은 환자의 말만으로 진단이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상담을 통해 환자가 얼마나 심한 공포증이 있는지, 잠을 못 자는지, 악몽을 꾸는지 등 해당되는 일종의 심리 검사를 통해 DSM-5의 진단기준에 부합되는지도 살피게 된다. DSM-5 진단기준도 A부터 H까지 세분화돼 있다. 한편 엑스레이 또는 호르몬이나 뇌 신경전달물질을 측정한다거나 등의 신체적 검사로 PTSD 진단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상담과 심리검사를 통해 진단을 내린다.

또한 PTSD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진단 내리기에는 좀 약한 경우도 있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스트레스 신드롬이라고 해야 더 맞는 경우다.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s)라고 해서 PTSD 관련 장애 하위 범주로 심리사회적 스트레스 때문에 사회적 관계나 직업수행 등에 문제가 생기는 상태도 있다. PTSD가 사회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지만 법정 소송까지 갔을 때 PTSD로 진단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치료는 어떻게


“다른 정신과적 치료와 마찬가지로 크게 약물치료와 상담치료가 쓰인다. 특히 인지행동 치료가 많이 사용된다. PTSD 환자의 주된 증상은 공포가 될 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을 다시 경험한다거나 그 사건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상황이나 자극에서 회피하는 행동을 보인다. PTSD 환자의 증상은 여러 가지인데, 환자에 따라 불안이 심하거나, 우울증이 심하거나, 망상증이 심할 수도 있다. 환자에 따라 우울증 조절 관련 약을 쓰거나, 불안증 약, 앵거 매니지먼트(분노 조절)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관련 약을 사용할 수도 있다. 또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환자는 기분안정제(mood stabilizer)를 처방한다.

그러나 PTSD 치료가 힘든 것은 치료 받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환자 스스로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며 노력해야 한다. 또 치료를 잘 안 받는 환자들도 많다. 치료 기간도 길다. 하지만 그냥 방치하면 자신의 삶 뿐 아니라 타인의 삶도 망가뜨릴 수 있다.

보통 재향군인을 위해 재향군인 병원의 치료팀이 팀 치료를 통해 환자를 돕는다. 팀 치료는 상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활치료까지 병행되며, 소셜 워커가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직업을 위한 기술 교육까지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피해망상증이 심해 난폭한 행동이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살 기도를 한다면 강제 입원을 시켜서 치료를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경험있는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고 체계적으로 팀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살 가능성도 있나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나는 정신과 전문의로 자살 문제를 일종의 합병증으로 본다. 환자에 따라 상황이나 병의 심한 증세가 다 다르다. 환자가 갖고 있던 우울증, 불안증 등이 더 심해져 자살할 수도 있다. 또 PTSD때문에 비의학적, 불법적 약물 남용을 하다가 약물 중독이 돼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고베 지진이 발생한 이후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자살한 케이스가 많았다. 평생 트라우마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인 관계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앵거 조절이 되지 못해 폭력적으로 싸우면서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거나, 교통 사고를 일으킨다거나, 혹은 심한 피해 망상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대인에게 이런 정신과적 문제가 왜 이렇게 많은가?

“옛날보다 요즘 세대가 약해졌다고 본다. 예전에는 어떤 전쟁이나 극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면, 요즘 세대는 그런 극한 상황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또 요즘 현대인들은 스트레스가 심하고, 몸도 약하다.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우울증, 공황장애, PTSD, 주의산만증, 피해망상 등이 부쩍 증가했다.

또 예전에는 주변 가족이나 친척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요새는 도움을 받을 사람이 주위에 없다. 다 고독하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 점점 더 심리적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생활을 위한 모든 것은 기술적인 부분은 날로 편안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전부 불안하다. 혼자 살아남아야 하며,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으며 신경계는 더욱 약해져 있어, 정신과적 질환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이온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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