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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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호들갑인가

2018-12-01 (토) 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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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기간제 여교사가 제자 두 명과 성관계를 맺었던 사건을 두고 여러 신문들은 ‘논산 여교사, 제자와 성관계’ , ‘말세다 말세’라는 제목을 달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말초신경자극제 아니면 도덕군자 같은 이 ‘말세타령'기사를 냉철히 좀 살펴보도록 하자.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인간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바에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게 상대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두운 밤이 있어 밝은 낮이 있듯이 말이다.이것이 바로 우주만물 음양의 이치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합법적이고 전통적이며 관습적인 결혼이란 제도를 통한 남녀의 성관계조차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일처일부, 일처다부, 일부다처, 다부다처 등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왔다.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일종의 사유재산 소유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니 동서고금을 통해 성행하는 매춘 포르노 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사' 랑'이란 미명 하에 벌어지는 성관계조차도 소매 또는 도매업 같은 흥정으로 이루어지는 상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미투(MeToo)'운동만 보더라도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약육강식이나 물물교환, 용역교환의 '주고받기(give and take)'에서 불거진 사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성직자들의 아동성 추행이나 남교사와 여제자의 성관계는 예사롭고, 여교사와 남제자의 성관계만 '말세'의 징조란 말인가.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삶과 사랑과섹스가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편리한 대로 ,사랑 따로 섹스 따로 삶 따로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의 ' 내로남불'이란 유행어까지 있지 않나.

여성에게는 타고난 모성애가 있는 데 일본에서는 이 모성애로 사춘기나 특히 대학입시 관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들의 성적 욕구를 안전하게 충족시켜주는 일이 흔하다고 들었다. 스페인에서는 어린 학생들의 무책임한 임신이나 성병 예방을 위해서 학교에서 자위행위 수업까지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제 더 이상‘ 난 너보다 거룩하다’는 식의 독선과 위선은 떨지 말아야 한다. 사랑이나 섹스는 주는 것이 받는 것이며 받는 것이 곧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은 그냥 ‘받는다’ 하지 않고‘ 받아 준다’고 한다. 주고받는 것이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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