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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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끝자락에서’

2018-11-27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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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거의 다 끝나고 있다. 며칠 안 남았다. 이틀만 지나면 12월이다. 어느덧 11월의 꽁무니는 또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 희미하게 사라진다. 이미 작별 인사를 마친 가을은 어디론가 황급히 떠난다.어느새 어설픈 초겨울도 마중인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제 가을의 끝이자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경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11월 끝자락의 하늘은 잿빛이다. 텅빈 들녘은 황량하고 거센 바람에 밀려 뒹구는 낙엽은 요란하다. 뒷뜰에 나목들은 스산하게 줄지어 서있다. 서리에 파란 풀들은 검붉은 색으로 변하며 생을 마감하고 있다. 찬바람은 옷깃을 여미도록 목덜미를 파고 든다. 올 해 다가온 계절 변화가 나의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좀처럼 허전함 속에서 헤어 나지 못하고 있다. 솟구치는 아쉬움 속에서 숙연함도 느낀다. 비우는 것이 진정 채워지는 것임도 깨닫는다. 그러다보니 앞으로 삶의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살갗으로 겨울의 찬기가 와 닿는 11월의 끝자락을 보내자니 마음은 몹시 불안하다. 한 해를 시작하며 세웠던 계획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시작조차 못했거나 흐지부지 끝내기 일쑤였다. 아무리 돌아봐도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말짱도루묵’이다. 그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지만 ‘헛수고’만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도 올 한 해가 한 달 정도 남아있음에 위안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11월의 끝자락은 한 해의 마지막은 아니다. 한 해의 종착역이 멀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해의 끝자락으로 가기 위해 이것저것을 준비할 수 있는 시기. 다시말해 한 해의 마무리를 위해 지나 온 시간을 되풀이 하여 음미하고 생각할 시간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다양한 부족의 인디언은 계절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사람의 마음 상태를 빗대어 1월에서 12월까지 달의 이름을 지었다. 자연을 벗삼아 살아서 인지 계절과 달의 표현이 시인 못지 않았다.

강물이 얼고 눈이 내리는 11월의 표현 역시 부족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표현했다. 이를테면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라크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체로키족), 강물이 어는 달(하다차족),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테와푸에블로족), 작은 곰의 달(위네바고족), 기러기가 날아가는 달(키오와족), 물건들을 서로 교환하는 달(동부 체로키족), 많이 가난해 지는 달(모호크족), 아침에 눈 쌓인 산을 바라보는 달(위쉬람족), 이름 없는 달(주니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아라파호족) 등이다. 이중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가장 마음에 많이 와 닿는다. 왜냐하면, 한 해를 헛되이 보낸 것같아 후회하고 낙담하고 있는 나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 11월도 막바지다. 11월은 오래 머물기보다는 떠남이 더 익숙해 서럽고 애절한 달이다. 돌아보면 아쉽지 않은 시간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게다. 그러다보니 아쉬운 시간을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아쉬움에 발목을 잡혀 후회만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알면서도 그렇지 살지 못하니 사람 아니겠는가?.

12월을 코 앞에 둔 11월의 끝자락은 아직 희망이 살아 있다. 한 해가 다 가고 있다고 어영부영 지낼 때가 아니다. 한 해의 끝이 한 달여 남았기에 새로운 기회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그 무엇도 할 수 있다. 미리 포기하지 말고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이다.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11월의 끝자락. 지나가 버린 아쉬운 시간은 이제 그만 잊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을 해보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 하지 않았는가.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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