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4일 은 프 레 디 머 큐 리(1946~1991)의 27주기이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1991년 이맘때, 프레디 머큐리가 45세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했다고 모든 신문에 탑으로 대서특필 됐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에이즈가 발견된 지 10년 정도로 체내 바이러스를 지연시키는 항바이러스제와 치료요법이 전혀 없어 주로 패션디자이너, 배우, 모델 등이 일단 걸렸다하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목숨이 떨어지던 시기였다.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들에게는 마치 14세기 중세유럽사회를 무너뜨린 흑사병이 도래한 충격을 주었었다.
지난 주말 세계 최고의 록그룹 퀸과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브라이언 싱어 감독) 를 보았다. 보컬 프레디 머큐리, 기타 브라이언 메이, 베이스 존 디콘, 드럼 로저 테일러, 이 4명의 퀸(Queen) 밴드는 EMI와 계약 한 1975~1977년 전성기시절 대표곡들이 쏟아졌다. 영화에는 멤버마다 작곡을 하는 과정과 퀸의 노래 22곡이 나온다.
배우는 립싱크를 하고 실제로 퀸의 정규앨범과 라이브 실황에서 노래를 그대로 가져왔다.‘ We Will Rock You'나 ’ We Are The Champions‘ 는 스포츠 경기장이나 영화, 광고에서 수시로 들리는 노래다. 미국 배우 라미 말렉이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아 열정적으로 연기를 했는데 실제의 프레디 머큐리가 좀 더 잘 생겼고 키도 좀 더 크다.
영화의 마지막 20분, 1985년 7월13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태디엄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무대가 하이라이트다‘. Somebody To Love' 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고 불멸의 히트곡인 ‘보헤미안 랩소디’ 를 부르는 프레디 머큐리, 인도계 파시족 혈통으로 태어나 영국으로 온 이민자 출신으로 인종차별과 양성애자로 수많은 스캔들을 달고 살았다. 이 날, 런닝셔츠와 색바랜 청바지 차림에 오른손을 불끈 쥔 채 팔을 치켜세우며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강렬한 에너지와 화려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퀸의 전성기를 다시 연 이 공연은 눈부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저때가 프레디 머큐리의 화양연화이구나. ”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말하는 중국말인‘ 화양연화(花樣年華)’ .
그런데 사후 27년이 지난 지금, 프레디 머큐리는 무덤에서 살아나 다시 화양연화를 누리고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운드 트랙앨범이 13일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200에서 3위에 올랐다. 40년이상 사랑받아온 보헤미안 랩소디가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하여 저승의 그를 이승으로 불러오고 있다.
‘화양연화’라는 말은 2000년도 홍콩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로 유명한데 장만옥과 양조위가 중년의 불꽃같으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려냈다. 방탄소년단이2015~2016년에 걸쳐 발매한 화양연화 앨범 시리즈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잘 나가던 시절을 화양연화라 말하기도 한다. 장롱에 금송아지가 있었거나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도 그 사람에게는 화양연화이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친구가 자신이 찍은 사진이 실린 사진 매거진을 보내왔다. 교사로서 정년 3년을 앞둔 친구는 아이들을 다 키웠고 살림에 대한 부담감도 없어지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사진을 배웠다. 주말마다 출사 나가는 일이 너무 좋아서 ‘지금이 바로 나의 화양연화구나’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역사학자가 미 동부와 서부 각 도시 초청강연회로 강행군 하느라 몸이 녹초가 되었지만 많은 이의 호응을 받은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말했다고 한다‘. 저 분의 화양연화가 지금이구나’ 했다.
지금,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고 이 순간 즐겁고 행복하면 당신의 화양연화인 것이다. 화양연화를 과거형으로 말하지 말자. 이 생을, 이 순간을 마음껏 누리자. 아무래도 화양연화의 뜻이 현재 아름답고 행복한 것으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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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