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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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2018-11-20 (화) 나 리/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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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아덴만의 석해균 선장 주치의로, 북한 귀순 용사의 기생충 발언으로 유명한 이국종 의사가 자신이 일하는 중증외상센터에 관해 책 ‘골든아워’를 냈다. 골든아워는 외상 직후 내외과적 치료를 받아 죽음을 예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책을 읽다 보니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나오고 상상할 수 있는 환자들의 상황과 치료를 위해 뛰는 의료인들의 모습에 잠시 추억에 빠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곧 근심과 황당함과 분노가 올라왔다.

생명 앞에선 효율성을 따져선 안 된다. 심장마비가 온 환자에게 모든 의료진이 달려들어 심장마사지하고 약들을 들이붓지만 결국 죽는다. 효율성을 따진다면 나이가 많거나 만성적인 질병을 가진 심장마비 환자 즉 죽을 확률이 99%인 환자에게 의료진이 시간을 써가며 비싼 약들을 투여해 환자를 살리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한다. 왜냐면 생명이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생명이 숫자로 계산될 수 없음을 말한다. 철도 한쪽엔 1명의 인부가 다른 쪽엔 5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다면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철로를 이동해야 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할까? 누구도 선뜻 1명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게 생명이다. 중증외상센터 상황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생명’의 소중함은 효율성과 자본원리에 의해 사라지고 있고 그 힘든 이야기를 피를 토하며 적은 책이 ‘골든아워’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을 위해 의료진은 대기하고 있는데 그 시간이 아까우니 ‘효율성’을 위해 외상센터 의료진이 일반 환자 진료를 하고 사고 상황을 위해 비워 둔 수술방이 아까워 일반 수술을 한다. 마침 운이 나빠 그 시간에 사고를 당한 환자는 결국 있어야 할 곳에서 쫓겨나 '골든아워'를 방황하다 죽는다.

가끔 인터넷 미씨xx에서 나오는 주제가 있다. '장애인 주차장에 잠시 주차했는데 딱지를 받았다. 너무하다. 주차장도 없는데 장애인 주차장을 비워두는 건 비효율적이다.’

에지몬트 테니스장에서 운동하던 하츠데일 사람이 마침 아이들이 리젠트 시험 보는 날 코요테에 물려 위중하다. 웨체스터 메디칼 센터에서 헬기가 날아왔다. 학교 축구장 한가운데 착륙하고 환자를 데려갔다. 우리는 어떤 엄마가 될까? 내 아이 시험이 헬리콥터 소음에 방해되었다고 미씨xx에 속풀이 할 것인가? 내 아이 축구 연습해야 하는 잔디장이 헬리콥터 착륙으로 잔디가 다 망가져 연습 못 한다고 항의할 것인가?

왜 하츠데일 주민이 에지몬트에 왔냐면서 하츠데일 주민이 발을 들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아픈 그 사람이 별 탈 없이 회복하기를,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다치지 않음을 기도하고 감사할 것인가?

<나 리/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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