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설(小雪)’

2018-11-20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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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리더니 날씨가 추워졌다. 어느 새 겨울이 코 앞이다. 소설(小雪)은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다. 24절기 중 20번째. 적은 양의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소설은 아직 날씨가 화창하고 낮에는 따뜻한 햇살이 남아있어, 봄과 같다고 하여 소춘(小春)이라고도 한다.올해의 소설은 바로 모레(22일)다.

소설무렵에는 추위가 시작된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다. 때문에 더 추워지기 전에 겨울 채비를 준비해야 한다.. 예로부터 이맘때에 월동준비을 시작한다. 배추와 무를 뽑아서 김장을 담근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를 만들거나, 호박을 썰어 말렸다. 그렇게 겨우내 먹을 식량을 비축해 두는 일을 했다. 겨우내 달콤한 간식이 되어줄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시기도 이 때다. 겨울동안의 땔감과 소먹이로 쓸 볏짚을 쌓아 두는 일을 하는 것도 소설 무렵이다. 여하튼, 소설이 지나면 찬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지며 눈도 자주 내리고 본격적인 겨울임을 실감케 한다. 뉴욕에도 겨울이 다가오니, 겨울 채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니 오늘은 문득 한국에서 어릴 적 보낸 겨울이 생각난다. 나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서민들은 대개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겨울날씨는 유난히 추웠다. 그래도 어린시절은 마냥 즐거웠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놀이터는 동네의 큰 공터. 단골 놀이는 오징어 놀이, 사방치기, 자치기, 구슬치기, 팽이 돌리기 등이었다. 공터 한 구석에서는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땅따먹기와 공기놀이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매일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질 무렵이 되어야 친구들은 한 두명씩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어둠 속에서 친구들이 삼삼오오로 다방구 놀이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즐기기도 했다. 그 땐 온종일 시끄럽게 뛰노는 일이 일상생활이었다


추운 저녁에는 불장난을 하다 불씨에 새로산 쫄쫄이 바지가 구멍이 나서 집에 가면 혼나기 일쑤였다. 첫눈이 내리던 날이면 눈사람을 만들었다. 벙어리 장갑이 없어도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연탄재를 굴려가며 눈사람을 더 크게 만들려고 했다. 강아지마냥 친구들과 동네를 뛰어 다니며 눈싸움도 즐겼다.

추운 날에 바깥에서 놀고 맨 손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다보니 매년 손, 발이 트고 동상이 걸리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지만 달리 병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저 바세린과 아티프라민으로 한 겨울을 보냈다. 그렇게 어린시절을 즐겼다.

어린아이들과 달리 동네 어른들은 겨울나기가 쉽지 않았다. 노란봉투에 담긴 쥐꼬리만한 봉급에 고개를 떨구던 아버지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겨울을 앞두고 월동준비에 한 숨 쉬던 어머니들도 수두룩했다. 그 당시엔 겨울을 맞기 전에 쌀을 들여 놓고, 광에 연탄을 가득 채워야 했다. 김장을 담그는 것도 겨울나기에 꼭 필요했다. 하지만 늘 이 세가지를 다 채운다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린 아이들은 늘 걱정이 없었다. 마냥 즐겁게 뛰어 놀았을 뿐이다. 그 때 동심은 그랬다.

이제 중년으로서 넉넉하지 않던 어린 시절의 겨울나기를 떠올리고 기억나는 추억을 회상하다보니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이민생활 속에서 살아 있음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소중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는 22일은 겨울 채비를 해야 하는 소설이다. 감사한 마음을 나누는 추수감사절이기도 한다. 감사( Thank)는 생각(Think) 에서 나온다고 한다. 올 겨울채비는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보자. 더불어 평범한 모든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습관처럼 갖고 살아가자. 그러면 추운 한 겨울은 물론, 매일매일을 다 함께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게다. 행복해서 감사한 게 아니라 감사하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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