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사하는 마음

2018-11-19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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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부르크스 기자(뉴욕타임스)는 미국인의 만족도를 조사하였다. 직업에 만족하는 자가 84%, 가정적 수입에 만족을 표명한 자가 76%, 그리고 전반적으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다고 말한 자가 65%로서, 이만한 만족도는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런데 나라의 현황에 대해서는 25%만이 만족하다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는 꼬리로 부터 네 번째로서 미국보다 더 처지는 나라는 이스라엘, 멕시코, 브라질뿐이다.

많이 가지는 것이 곧 행복은 아니다. 헬렌 켈러는 “내가 사흘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첫날은 친절했던 사람들과 갓난 아기의 얼굴을, 둘째 날은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서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발자취와 놀라운 창조를 음미하고, 마지막 날은 떠오르는 태양과 숲의 새 소리, 바다의 웅장함과 파도 소리를 듣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우리가 돈을 안 들여도 즉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우리가 불행감을 갖는다면 그것은 나에게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심성이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1620년 12월26일 영국의 청교도(Puritan) 102명이 신천지인 아메리카 땅 플리머스(Plymouth, MA)에 착륙하였다. 그들은 모래를 날리고 기쁨의 함성을 지르면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로 117일간 무사히 항해하였음을 감사하였고, 항해 중 2명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드렸으며, 폭풍에 돛이 부러졌지만 파선되지 않음을 감사하였다.

개척민의 초대 지사가 된 브래드포드 씨는 새 땅에 정착한지 3년만에 감사절 지킬 것을 이렇게 선언하였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넘치는 수확을 주셨다. 인디언의 도움으로 옥수수 밀 호박과 여러 가지 채소를 가꾸었으며, 숲에서 사냥을 하고 바다에서 생선과 조개를 넉넉히 얻도록 축복해 주셨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지켜주시며, 여러 질병에서 건져 주셨다. 무엇보다 우리의 양심을 따라 자유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모든 순례자들(Pilgrims)은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 아이가 모두 모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라.”

이들 아메리카 건국의 조상들은 풍요 속에서 감사한 것이 아니다. 오막살이를 짓는 것보다 7배나 되는 무덤을 팔 수 밖에 없었고, 하루 옥수수 다섯 개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추운 겨울을 지내면서도 감사하였던 것이다. 1863년 남북전쟁이 한참 심하여 고통 속에 있을 때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미국의 국경일로 선포하였다. “국내 국외에 사는 모든 미국인은 이 날 하늘 아버지의 선하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려라.”

나는 살면 살수록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해돋이의 기적, 아기의 탄생, 계절마다 바뀌는 색깔의 조화, 아이들의 웃음소리,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명, 예술가들의 위대한 창작, 착한 사람들의 숨은 봉사, 자유를 향한 우람찬 함성들, 불치병과 싸우는 의학자들, 흐뭇하고 감사한 일이 우주에 꽉 찼다. 장말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 아닌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행복해진다. 교만과 아집과 욕심의 좁은 상자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급선무이다. 화의 분화구에서, 질투의 용광로에서, 경쟁의 수렁에서 헤어 나와 아이 같이 맑고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가족과 이웃에게 그리고 조물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면 당신도 행복해진다.

달빛에 춤추는 허드슨 강/ 답답함을 식혀주는 맨하탄의 강바람/ 고향을 전해주는 억만의 별들/ 세월 속에 불을 붙이는 파크웨이의 단풍/ 사랑과 우정과 따뜻한 눈동자들/ 아, 아름다움은 끝없이 이어진다. 올려보는 불만보다 내려보는 자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욕망의 우물을 파며 인생을 마치지 말고 사랑하며 또 사랑하며 삶을 매듭지어야 하지 않을까!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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