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幸福/happiness).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아님, 무엇일까.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不幸/Unhappiness)이다. 답은 간단하다. 해피 한 게 행복이고 해피하지 않은 게 불행이다. 우리가 태어나 살면서 맞이하는 시간 중 해피한 시간이 차지하는 분량은 얼마나 될까. 100%라면 거짓말. 50대 50정도라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100% 행복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한다. 노력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0%만족한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삶속에서의 행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거. 행복한 일이 있나하면 불행한 일도 따른다. 태양이 밝게 빛나는 날도 있지만 주룩주룩 비만 내리는 날도 있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다.
행과 불행의 평균 지수가 50대 50이라면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욕심(慾心/Greed)을 줄이는 것, 탐욕을 줄이는 거다. 욕심이 다 나쁜 건 아니다. 욕심 중에 포함될 수 있는 욕구(欲求/need)와 욕망(慾望/desire).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 이것은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욕구마저도 없다면 무슨 희망으로 살아야 하나. 행복을 추구하려는 염원마저도 끊긴다면 살아있는 목숨이 아닐 듯. 그러니 욕구와 욕망은 희망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과욕과 탐욕하고는 다르다. 오늘 비록 불행할지라도 내일은 행복해지리란 희망. 그것이 긍정의 마음에 담긴 욕구와 욕망일 수 있다.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 남과 쓸데없이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비교의식이야말로 사람을 처절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다. 비교하지 말고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작은 것이라도 즐거움을 찾아 살아야 한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의 비교.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 자신보다 잘 난 사람과의 비교. 자신을 처량하게 만든다.
하지만 비교(比較)도 긍정적인 비교, 합리적인 비교는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이 같은 비교의식은 건설적인 비교다. 나도 잘 되는 사람처럼 될 수 있다고 하는 도전정신의 비교의식은 좋다. 사람은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 그 그릇이란 태어날 때 그릇, 자랄 때 그릇, 청년기와 중년기 그릇, 노년기 그릇, 모두 다르다.
나와 남의 그릇이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란 식으로 살아감이 행복한 거다. 너의 길이 있나하면 나의 길도 있다. 너의 길 보다는 나의 길에 관심과 애착을 가져야 한다. 나의 길에는 평생을 같이 살아가야 할 부부와 가족이 포함되고 가까운 친구들도 있다.
‘실험정신의학 저널’지가 발표한 것 중 하나.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기분 좋게 걷는 것도 한 방법이란다. 걷는 것마저도 행복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 걷지 못해 아파하며 누워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도 햇볕을 쪼이며 걸으면 행복지수가 더 올라간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햇볕을 쬐면 우울증 증세가 낮아진다 한다.
펜실베니아주립대학의 실험결과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행복해진다. 자연의 소리가 담긴 씨디(CD)도 괜찮단다. 허긴, 하얀 눈이 내린 겨울산행을 해 본 사람은 알게다. 높은 나뭇가지에서 눈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바람 부는 소리. 한 겨울 매서운 바람 같지만 사람의 탐욕스런 마음을 시원하게 비워주는 바람소리들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밖에서 찾으려 한다. 행복이란 마음 안에 있는데도. 마음이 즐거우면 행복한 거 아닌가. 마음처럼 가까운 곳에 행복의 자리가 있는데 사람들은 마치 ‘파랑새’의 주인공 틸틸(Tyltyl)과 여동생 미틸(Mytyl)처럼 행복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난다. 자신의 집에, 자신의 마음속에 행복의 파랑새가 있음에도 멀리 떠난다.
행복의 조건. 감사와 즐거움으로 마음속을 꽉 채워주고 나면 불행 끝, 행복시작이다. 말은 쉽다. 어렵다. 습관 들여지게 노력해야 한다. 탐욕을 버린다. 비교의식을 버리고 나와 남의 다름을 인정한다.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려 한다. 햇볕을 쬐며 걸어도 본다. 행은 큰아들, 불행은 작은아들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면 더 행복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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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