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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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글래디에이터(American Gladiators)

2018-11-16 (금) 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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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게임이 참 거칠다는 것이다.
200파운드가 넘는 거구들이 전력질주 하는 빠른 속도와 몸과 몸이 부딪치는 격렬함이 이 경기의 매력이요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인다. 스탠드를 가득채운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자기편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디서일까?

아, 그 영화였구나. 벌써 1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스캇 리들리 (Scott Ridley)의 영화 글래디에이터 속의 장면들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함성, 그리고 경기장을 피로 물들이며 사투를 벌리던 글래디에이터들의 모습과 미식축구 경기의 장면들이 겹쳐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한마디로 폭력이 아닐까?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매력이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것이 아닐까?

미국역사는 간결하게 말하면 서부로, 서부로 그 영토를 넓혀갔다는 것으로 요약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이 서부로 팽창하던 시대의 역사를 다시 간결하게 요약한다면 이 땅에 살던 원주민(인디안)들에 대한 폭력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폭력으로 밀고 힘과 전략으로 상대방의 영토를 탈취하던 역사와 이 미식축구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힘으로 밀고 상대방의 약한 곳을 공격하여 첫 다운(First Down)을 반복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절제된 폭력으로 상대방을 밀어붙여서 영토를 넓혀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미식축구 경기는 어느 정도 미국의 역사를 게임의 형태로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이 경기에 열광하는 것 일까? 야구를 능가하고 미국 제일의 인기 스포츠가 된 미식축구를 보면서 현대판 글래디에이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폭력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스포츠에 어느 정도의 폭력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현상은 다른 스포츠에서 보다 미식축구에 더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더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고 더 많은 선수들이 머리와 뇌에 손상을 입는 것이 그 한 증거일 수 있다.

나는 가끔 왜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에 관련되어 있는지 묻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7년간이나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폭력을 좋아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한 속성일까? 왜 전 세계가 열광하는 축구(Soccer)가 미국에서는 인기없는 3류 스포츠일까? 미식축구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것이 진정한 스포츠라면 그 폭력성에 흥분하기보다 그 폭력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를 내세우고 시작된 현대 올림픽이 건강한 삶과 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스포츠의 총화라면 그 원형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기본적으로 전쟁의 폭력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바꾸기 위한 위대한 시도였다. 폭력성의 제거가 요체였다.

<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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