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강경·개복수술로 성공율 UP, 합병증 없고 월경통 99% 호전
▶ 아르곤 레이저로 종괴 깎고 재건, 임상 33명 중 18명이 임신 성공
자궁선근종 발생
# 빈혈을 동반한 생리과다, 생리통·골반통과 난임으로 병원을 찾은 35세 여성 A씨는 자궁선근종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난임 전문의가 “(혹처럼 튀어나온) 선근종 절제수술을 받으면 임신하지 못 하거나 임신을 해도 자궁이 파열될 수 있다”고 해 10여 차례 난임시술만 받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임신에 실패하고 증상은 악화됐다.
A씨는 다른 난임 여성으로부터 을지대 을지병원 권용순 산부인과 교수가 수술한 자궁선근종 환자가 임신·출산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듣고 권 교수를 찾아갔다. 선근종을 모두 절제하고 남은 조직을 잘 봉합하는 자궁성형보존 수술을 받은 A씨는 1년여 뒤 임신했고 38세에 그토록 바라던 아기를 출산했다. 고질적인 통증도 거의 사라졌다.
# 혹처럼 튀어나온 선근종은 보이지 않지만 자궁 전체에 종괴가 넓게 퍼져 있고 경계가 불확실해 자궁선근종 진단은 받은 30대 후반 B씨. 의사로부터 “수술적 치료가 불가능하며 자궁을 들어내는 자궁적출술이 가장 효과적이고 표준적인 치료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아기를 원하는 그녀에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수소문 끝에 동국대 일산병원 노주원 산부인과 교수를 찾아가 수술을 받고 임신에 성공했다. 아르곤 레이저로 얇고 넓게 자궁의 표면을 반복적으로 깎아낸 뒤 새로운 봉합 방법으로 자궁을 재건하는 수술을 받고 나서다.
자궁선근종은 자궁내막 샘조직과 실질조직이 자궁근육층으로 침투해 굳은살처럼 박혀 있어 난임·유산·조산의 원인이 된다. 국소적으로 혹(선근종)이 생기기도 하고 자궁 전반에 경계가 불확실한 종괴가 넓게 퍼져 있는 경우도 있다. 둘을 합쳐 자궁선근종이라고 한다. 35~45세 여성에게 잘 생기며 침투한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근육층의 성장을 촉진해 자궁벽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고 자궁이 임신 12주 정도 크기까지 커질 수 있다. 30~50%에서 생리과다증, 심한 생리통을 유발한다. 난임 여성 2명 중 1명에게서 자궁선근종이 발견되며 자연유산이 2배 이상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수정란의 자궁내막 착상을 방해하고 자궁벽의 탄력을 떨어뜨려 태아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용순·노주원 교수의 열정으로 선근종을 포함한 자궁선근종 환자들도 점차 난임과 생리과다, 극심한 생리통·골반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권 교수는 지금까지 300명가량의 여성에게 선근종 절제 및 자궁재건 수술을 했다. 미혼·기혼이 반씩 되는데 올해 9월까지 26명이 임신(자연임신 12명, 난임시술 14명)에 성공하고 이 중 18명이 별 문제 없이 아기를 낳았다. 평균 35.4세에 수술을 받고 임신까지 평균 1.8년이 걸렸다. 을지병원에서 출산한 16명은 모두 만삭에 가까운 평균 36.3주에 응급상황 없이 제왕절개로 분만했다. 신생아 출생 체중의 중앙값은 2.78㎏였고 발육저하 소견은 없었다. 분만 후 자궁수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산후출혈 합병증도 없었다. 월경통은 개복수술 후 99%가, 복강경수술 후 97%가 호전됐다. 수술을 받은 여성의 절반이 미혼인 만큼 앞으로 임신·출산에 성공하는 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권 교수는 “자궁선근종 수술 이후 자궁의 환경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태아의 자궁 내 발달 및 성장이 정상적임이 증명됐다”며 “잘못된 정보 때문에 극심한 통증 등을 견디며 효과가 제한적인 약물치료를 받거나 난임시술을 반복하며 병만 키우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병변 크기가 5㎝ 미만이면 복강경 수술을, 5㎝ 이상이면 개복수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다. 복강경 수술은 자궁성형술을 하기 어렵고 자궁 근육층과 내막의 끝 부분을 가늠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권 교수는 지난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산부인과학회(SEUD)에서 최우수 구연상을 수상한데 이어 이달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제26회 세계산부인과불임학회(COGI)에서 ‘자궁선근종, 자궁보존수술 후 임신 및 출산 예후’ 결과를 발표한다.
노 교수팀이 개발한 수술법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신의료기술 인정을 받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평가에 따르면 이 수술적 치료법은 기존 기술과 비교해 임신율·출산율을 높여주고 수술 후 생리과다증·곤란증을 개선했다. 합병증·부작용 가능성은 낮았다. 1차 임상연구에서 수술 후 임신을 시도한 33명 중 18명이 임신에 성공했고 임신 중 자궁파열 같은 합병증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8명은 유산·자궁외임신으로 출산에 실패했다.
노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고 결혼·출산연령이 높아지고 있어 가임여성에서 자궁선근종으로 인한 난임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동안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왔는데 새로운 수술적 치료법이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은 만큼 난임으로 고통받는 많은 여성에게 새로운 희망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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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웅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