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에 날아든 차향기

2018-11-10 (토) 소병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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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속, 스팀에 쌓여 물을 함빡먹은 하얀 꽃봉오리가 투명한 유리차(茶)주전자 안에서 꽃의 향연을 벌리기 시작한다. 꽃망울은 하늘거리며 꽃잎이 한 잎, 한 잎 피어 겹겹이 싸고있던 하얀 꽃잎은 날개짓 하는 나비처럼 하늘 거리며 부챗살 모양으로 벌어진다 .

버라이어티한 꽃잎은 작은 요정이 되어 발레를 추기 시작한다. 그럴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 주전자 속을 현란함으로 가득 채운다. 장미향과 자스민 향이 어우러져 피어올라 그 향에 취해 차를 마신다는 생각 전에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차를 즐기는 이는 누구나 이 순간만은 환희(歡喜)에 젖게될 것이다.

차를 마시고 나면 가슴 속 깊이 꽃의 요정들이 들어와 이야기 하고 싶어 할 것 같은 꽃차( Flowering TeaNuMi ) 누미 차의 공연이다 . 달포 전 자그마한 소포상자가 배달되었다. 그리 무겁지 않은 작은 상자 안에는 유리로 된 주전자와 예쁜 꽃봉오리 모양의 차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시애틀에 사는 막내아들 내외의 안부 쪽지와 함께 날아든 누미 차(茶)였다 .


“ 엄마! 인터넷 통해서 알아낸 차(茶)에요. 향도 좋고 너무 예쁘게 생긴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어 보내드립니다. 문단에 등단하셨다는 소식 듣고 저희 내외 무척 좋아했어요. 엄마가 젊어서부터 하고픈 부분이셨잖아요. 젊으셨을 때는 층층 시하에 우리 키우시느라 전혀 짬이 없으셨으니 지금이라도 작품 활동 만끽하세요. 컴퓨터 치시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많이 즐기세요. 엄마. 차의 향을 담아막내 내외 드림”.

막내라서 인지 아들은 늘 정이 많고 아이 아빠라는 제 위치를 잊은 듯 어리광스런 말투다. 머리 맞대고 도란거리며 썼을 쪽지 편지를 읽으며 두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보는 파란하늘이 낯설다. 가을들어 줄곧 내린 가을비가 차가운 가을바람을 몰고 오겠지. 하지만 누미차 이 한 잔이 내 앞에 있어 아직은 무명 글쟁이인 나의 가슴까지 온기는 촉촉히 젖어든다. 차 한 잔에도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행복에 젖을 수 있
다니, 가족 사이에 깃드는 사랑과 보살핌의 정이 귀하고 사랑스럽다는 그 사실이 뼛속 깊이 스며오는 가을 오후다.

진정한 사랑에 마음의 표현은 큰 것이 아니어도 좋다.

<소병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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