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색 이야기

2018-11-09 (금) 전미정 미술 치료사
크게 작게

▶ 커네티컷 칼럼

한 점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 그림 앞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한참 들여다보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바람 쐬러 나온 듯 휘휘 둘러보고 지나가는 이도 있다. 색 자체에 이끌려 혹은 신기해서 때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이유로 그림 앞을 떠나지 못하기도 하고, 단 몇 초로 충분하다는 듯 가뿐히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작가의 얼굴을 본 적 없고 단 한마디를 나눈 적도 없지만 그림 앞에서 깊이 공감하고 시공을 뛰어넘는 소통을 하기도 한다. 장편의 서사시보다 때로 단 몇 구절의 단시가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하듯이 한 폭의 그림은 우리의 지친 일상을, 마음 속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데 기여한다.


그림 속에 담긴 여러 색은 대체 어떤 활동을 하는 걸까?
그림 속의 색은 얼핏 같은 색으로 보여도 문화와 정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비춰지기도 한다. 특히 동서양 각각이 지닌 색의 의미와 상징은 사뭇 달라서 같은 자연을 표현해도 동양미술은 곡선, 농담으로 음양을 표현하고 삼원법(근, 중, 원경)과 여백의 미로써 자연을 훼손치 않고 보존과 동반을 꾀하는 반면 서양미술은 빛, 광선, 투시원근법, 과학적 사고로 분석적인 기법을 활용해 사실묘사 및 조형미를 중시한다.

동양미술은 음양오행설에 기초하는데 자연운행 안에 절대적인 법칙이 있으며 자연을 음과 양의 두 기운, 이원적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본다. 음과 양으로 이뤄진 우주는 다시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한 방위와 계절로 나눠져 오방(동, 남, 중앙, 서, 북)을 주된 골격으로 삼고, 오방은 각각 독립된 존재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주의 움직임을 운행한다. 또한 오행(목, 화, 토, 금, 수)으로 서로 항진시키고 동시에 억제하는 과정을 이어가는데 이 오행의 정, 중, 동이 완만히 이루어지는 때를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된 상태라고 한다.

오행에 따른 오방색(청, 적, 황, 백, 흑)을 활용해 음양의 조화를 표현하는 동양미술은 각 색채의 사용을 통해 아름다움 보다는 색채의 상징성과 의미를 부여하고, 진지함과 철학적 사고를 담아낸다. 오방색은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습으로 한국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다. 각 사물의 현상, 동태 등에 따라 오장(간장, 심장, 비장, 폐, 신장)의 상태와 연관하여 표현하고 이를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등을 결부시켜 활용하였으며 복식 및 음식과 식기와의 배색과 조화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이 적지 않았다. 또한 색의 활용을 통해 길흉화복을 다스리고 기원하였는데 색동옷, 오곡밥, 단청 등은 언제 봐도 감탄스럽다.

빠른 속도로 바뀌어가고 교류하는 첨단의 세상, 동서양을 구분 지을 것 없이 어느 곳을 돌아봐도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와 조명이 넘쳐난다. 문화, 양식과 함께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주변의 환경도 나날이 편리와 효능을 추구하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 오색을 고루 사용해 신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심신의 안녕도 꾀했던 우리 조상의 지혜를 가끔은 소환해 보았으면 한다.

나무의 푸름이나 푸른 하늘, 바다처럼 생명감을 선사해주는 청색,
붉은 노을, 짙은 단풍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풍요의 적색,
한없이 품어주는 대지를 연상시키는 황색,
깨끗함, 맑음의 상징으로 무엇이든 새롭게 해줄 듯 한 흰색,
어두움이자 고요함, 만물을 포용하는 검은색, 등등 여러 색들이 우리 곁에 있다.

당신에게 , 당신의 소중한 이에게 물어보자.
오늘은 어떤 색으로 지냈나요, 혹은 어떤 색의 하루를 보내고픈가요?

<전미정 미술 치료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