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2018-11-07 (수) 대니얼 홍 편집위원
크게 작게

▶ 타인의 삶

생물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특정 종교에 관해 여러 번 이야기를 꺼냈고, 심지어 “세상의
모든 일은 이 종교가 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역설했다.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눈치와 주변 분위기를 상당히 살폈던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클래스 모든 학생들에게 메모지 한 장씩 건네 주면서 “지금까지 내 수업을 들으며 건의사항이 있으면 익명으로 써서 제출하기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나는 “수업시간에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는 자제해주시면 좋겠습니다”고 적어서 냈다. 다음 날, 선생님은 “이것을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학생이 선생님께 ‘자제’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불손하다. 이것을 쓴 학생은 방과 후 나를 찾아오도록 하라”며 언성을 높이셨다. 겁에 질린 나는 그날 오후에 선생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그날 이후,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그 메모지 작성자가 누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학생들에게 공개하셨고, 결국 나는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며 의기소침한 나에게 왕따는 마치 사형선고와 같았다. 그 때부터 나는 학교가 무섭게 느껴졌다.


S학생은 자신의 대학 공통지원서(commonapp) 에세이를 그렇게 시작했다.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 로버트 코미어가 1974년에 출간한
소설 <초콜릿 전쟁>은 S학생과 비슷한 경험을 한 주인공을 그렸다. “그들이 그를 죽였다”로 시작한 소설은 트리니티 고등학교에 전학 온 제리가 겪은 권위로부터 억압받은 경험을 보여주었다.

트리니티의 교감 레온은 교장 직무대리 임무를 수행하면서 학교 재정을 남용한 후 그것을 메꾸려고 학교 전통행사인 초콜릿 판매를 이용했다. 예년보다 2배가 넘는 초콜릿 판매량을 정하고 가격도 두배나 올려 더 큰 이윤을 목표로 삼았다. “이것은 학교의 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일”이라고 교감이 부추기자 학생들은 예년보다 훨씬 더 많이 팔아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그저 교감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리가 제동을 걸며 트리니티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교감은 당황했고, 예상치 못했던 제리의 도발에 학생들은 잠시 흔들렸지만 “감히 학교 전통에 반항해?”라며 오히려 제리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콜릿 판매량이 점차 오르기 시작하자 제리를 향한 학생들의 시선도 차갑게 변했고, 제리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했다. 학생들은 제리를 마치 전염병에 걸린 환자처럼 취급하며 피해 다녔다.

청소년기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시기다. S학생과 제리의 공통점은 선생님의 권위와 룰을 따를지 아니면 해체할지를 고민하고 행동한 것이다.
그러나, 학생 개개인을 의견과 판단력을 지닌 개별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복종하고 통제를 당해야 하는 집단으로 보는 선생님과 학교는 S학생과 제리에게 원치않는 왕따의 쓴맛을 보게 했다.

선생님이 시키면 하고 금하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인의 뜻에 결정되고 만들어지는 조형물 같은 존재로서 지내는 삶에 익숙하다 보면 스스로 눈을 감고 아무 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런 이의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마음은 편하겠지만 그런 삶은 절대로 나의 삶이 될 수 없다.

<대니얼 홍 편집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