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 가을의 마지막 달인 11월에 접어들었다. 11월에는 입동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는 내일(7일)이 입동이다. 24절기 중 19번째 절기인 입동은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예로부터 입동에는 ‘늦가을이 지나 낙엽이 쌓이고 찬바람이 분다’고 했다.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던 셈이다. 하지만 뉴욕에서 맞이하는 입동은 다르다. 겨울의 시작보다는 늦가을이 제격이다.
바야흐로 늦가을이다. 매해 그렇듯 여름은 지나치게 빨리 오고, 너무 늦게 떠난다. 이와 달리, 가을은 너무 늦게 오고 너무 빨리 떠나는 게 아닌 가 싶다. 여하튼 지금은 만추의 계절인 것이다.,
늦가을은 추풍낙엽의 시기다. 여기저기 떨어진 나뭇잎이 거센 바람에 뒹군다. 낙엽이 길위로 수북히 쌓인다. 가을이 점점 깊어진다. 스산한 바람이 일어 가을의 정취가 단풍으로 내려 앉는다. 물이 들대로 든 단풍은 절정의 빛깔을 뽐낸다. 지난주말 다녀 온 베어마운틴엔 단풍으로 꽉 찼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겹겹의 산들은 경이로웠다. 동네의 길목마다 아직도 조금 남은 푸르름과 어우러진 붉은잎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야말로 만추만이 줄 수 있는 계절의 선물이다.
만추의 계절엔 어디를 가나 전성기를 누리는 꽃이 있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 국화가 바로 주인공이다.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꽃이다. 신이 만든 꽃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만든 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잘 마치고 신의 품으로 돌아가 편히 쉬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서양에서의 국화는 저승에 가서는 평화롭게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국화의 색, 모양과 크기는 품종에 따라 다양하다. 꽃말도 색별로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색 국화는 성실, 진실과 감사를 의미한다. 노란색 국화는 실망과 짝사랑을 뜻한다. 빨간색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유럽에서 흰국화는 죽음과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며, 중국과 일본에서는 끝없는 애도의 슬픔을 뜻한다. 특히 고대중국에서 국화는 불로장수를 의미했다. 이 때문에 많은 위정자들이 국화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국화는 사군자 가운데 하나다. 매란국죽(梅蘭菊竹)으로 줄여 부르는 사군자는 겨울의 매화, 봄의 난초, 여름의 대나무 그리고 가을의 국화를 일컫는다. 사군자는 충절의 군자(君子)를 상징한다. 군자란 완전한 인격을 가졌다는 뜻이다.
국화는 뭇 꽃들이 시들고 난 늦가을에 서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핀다하여 곧은 기상과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다. 추운가을에 핀다하여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간의 인고와 성숙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화는 일찍 심어 늦게 피니 군자의 ‘덕(德)’이요, 서리를 이겨 피니 선비의 ‘지(志)’이며, 물 없이도 피니 가난한 선비의 ‘기(氣)’라 하여 이를 국화의 삼륜(三倫)이라 했다.
다산 정약용이 쓴 ‘국영시서’에는 국화가 여러 꽃 중 뛰어난 네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던 온갖 꽃들이 다 시들고 떨어진 다음에 늦게 피는 것이 하나이다. 꽃이 금방 지지 않고 오래도록 견디는 것이 둘이다. 향기로운 것이 셋이다. 그리고 고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면서도 싸늘하지 않은 것이 넷이라 한다.
계절이 수상하다. 늦가을에 봄날 인듯 매양 따사롭다. 하지만 한걸음 더 나가면 찬서리도 내릴게다. 어느새 시린 겨울도 소리 없이 다가올 것이다. 계절은 늘 묵묵히 제갈길을 가기 때문이다.
비록 엷어진 가을이지만 가을이 가득하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국화향기가 짙은 늦가을이다. 다른 꽃과 나무들은 서리를 맞으면 시들지만 국화는 오히려 서리가 와야 진가를 발휘한다. 그래서 국화는 심한 서리에 굴하지 않는다고 하여 ‘오상고절(傲霜孤節)’이란 이름이 붙기도 했다. 문득 오상고절을 떠 올리니 그동안 온갖 세파를 견뎌온 중년남성으로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의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중년으로 살자니 가는 가을은 유독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을과 함께 가는 세월 때문이다. 내년에도 가을은 오겠지만 올가을과는 또 다를 테니까. 오늘은 느긋함으로 늦가을의 정취를 더 누리고 싶은데, 가는 해가 빨리진다. 석양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어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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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