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는다.’ 라는 한국어는 바로 가려 써야 한다. 대체적으로 액체에 속하는 것은 ‘삶는다.’라고 말한다. 가량 계란은 속이 흐늘거리는 액체에 가까움으로 “계란을 삶는다.”고 말해야 한다. “계란을 끓인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반면 고체는 ‘끓인다.’고 말한다. 라면은 고체이므로 “라면을 끓인다.”가 맞고 “라면을 삶는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용법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고구마는 고체이지만 “고구마를 끓인다.”고는 하지 않는다. “고구마를 찐다.”고 해야 맞는다. 그러니 외국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의미를 떠나 ‘삶는다.’는 말은 사람을 달래거나 꾀어서 자기 말을 듣게 만드는 것도 ‘삶는다.’고 표현한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태어 “구어 삶는다.”고 말한다. 구어서 삶기까지 하는 것이니 철저히 내 편을 만드는 것이 “구어 삶는 것”이다.
나는 형제끼리 혹은 형제자매끼리 아귀다툼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어려서는 장난감 등 물건을 가지고 싸우지만 커서는 재산 분쟁 같은 돈 때문에 형제가 싸운다. 이런 것을 한국 속담에서는 “콩깍지가 콩을 삶는다.”고 표현한다.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는다는 말인데, 콩이나 콩깍지나 모두 한 줄기인데 형제 싸움이 바로 그렇다는 표현이다. 집안싸움은 매우 누추하다. 부모가 자식들을 잘 교육하지 못한 것이다. 부모도 자식들을 잘 삶기 힘들다. 프랑스 혁명(1789년)의 주역들은 동지들의 단결을 촉구하기 위하여 “형제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표어를 내걸고 싸웠다. 투쟁 정신으로도 형제애가 강조된 것이다.
사자성어(四字成語)에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재미있는 말이 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개가 필요 없으니 그 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이다. 그 의미는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동업자를 버린다.”는 의리(義理) 없는 못된 인간을 가리키는 데에 쓰이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재벌 2세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종종 있었다. 서울가정법원에 의하면 상속재산 분할 사건이 2011년에 154건이었던 것이 현재는 266건으로 30%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알려진 리 콴유(李 光耀) 전 총리의 자식들이 유산과 권력 때문에 집안싸움을 벌린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아버지도 제 아이들을 탈 없이 잘 삶으려면 무척 힘든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형제의 의가 좋은 것이 곧 효도로 알려졌다.
누구를 “삶는다.”는 말은 설득(說得)을 가리킨다. 그것은 중요한 대화술이다. 설득이란 내 말을 믿고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니까 결코 쉽지 않다. 절대로 주의해야 할 것은 말이 논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설득하려고 애쓰지 말고 대화를 질문에 초점을 두고 내가 상대방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설득에 성공할 수 있다. 설득의 핵심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적은 사람에게 설득을 일삼는 것은 오히려 미움을 산다.
공자님이 가르치신 <설득을 위한 대화의 요령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대놓고 말하지 말고 넌지시 말하라. 그래야 뒤탈이 없고 상대가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다. 둘째, 꾸밈없이 대놓고 말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솔직한 대화를 말한다. 상대가 나를 솔직하고 정직한 인간임을 인식하면 대화가 훨씬 쉬워진다. 셋째,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겸손은 믿음의 비결이다. 반대로 교만하게 인상을 주면 말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실패한다. 넷째, 곧장 찔러서 말하는 것이 성숙한 대화법이다. 빙빙 돌아 말하는 것은 공연한 의심구심을 일으켜 역효과를 낸다. 다섯째, 비꼬아 말하는 화법이 좋다. 즉 딴 일에 견주어 말하는 화법이다. “누가 그러더라.” 혹은 “이런 일도 있었다더라.”는 등의 간접 화법이 상대를 안심시키는 적절한 설득의 요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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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