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캐러밴의 참담한 모습

2018-10-27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크게 작게
미국이라는 나라. 참 살기 좋은 나라다. 수퍼에 가면 먹을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거리에 나가면 자동차가 홍수를 이룬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고 표현의 자유도 있다. 주거 이전의 자유와 등록만 하면 비즈니스를 오픈할 수 있다. 인종차별도 과거 1960년대와는 다르다. 극빈자에게 최우선의 도움을 주는 나라.

미국이다. 오히려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이 더 호강하는 나라인 것 같다. 그래서인가. 지금 미국에 들어오려고 수천수만 명이 떼를 지어 미국 국경으로 모이고 있다. 일명 캐러밴(Caravan). 캐러밴이란 낙타나 말 등에 짐을 싣고 떼 지어 다니며 장사를 하는 대상(隊商)을 뜻한다. 그러나 이들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떼를 지어 미국에 들어오려고 하는 집단 이동자의 행렬인, 이민자들이다. 가난과 폭력, 범죄를 피해 미국 정착을 희망하는 자들. 중남미의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주민들이다. 이들은 지난 12일 160여명이 온두라스에서 출발해 멕시코로 향했다. 그러던 행렬이 22일엔 멕시코 국경을 넘으면서 1만 여명으로 늘어났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미국을 향한 이들의 발걸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반응이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는 그 국민이 그들의 나라를 떠나 미국에 불법적으로 들어오려는 걸 중단시키지 못했다”며 “이제 우리(미국)는 그들에게 제공됐던 대규모의 원조를 끊거나 축소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앞으로 수만 명으로 늘어날 수 있는 캐러밴. 지금은 멕시코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은 이들의 불법입국을 막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폐쇄할 계획까지 갖고 있다. 지구라는 촌에 함께 살면서도 누구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산다. 반면, 누구는 뱃가죽이 등가죽에 가서 붙을 정도로 굶으며 살아간다. 지구촌의 비극이다.

굶는 건 다행이다. 폭력과 살인이 이유 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나라. 이들이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라 불안해서 살지를 못한다. 엘살바도르는 국민 100명 중 1명이 갱단이다. 살인 율은 전 세계 1위. 2위는 온두라스. 과테말라는 빈부격차, 정치 불안에 치안은 엉망진창을 넘어 막장이란다.

11월6일, 미국의 중간선거일이다. 이날 상원과 하원의원을 선출한다. 국회의원선거다. 중간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미국의 정치권. 트럼프는 캐러밴을 선거 이슈로 떠올리고 있다. “캐러밴, 즉 미국에 불법적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한심한 미국이민법을 바꾸는 표결을 하지 않는 민주당을 탓하라”고 한다.

또 트럼프는 18일 몬테나주 미줄라에서 열린 유세에서 “민주당이 캐러밴을 후원하고 있다”는 민주당 후원론을 꺼내면서 “캐러밴이 민주당 측의 돈을 받고 국경으로 몰린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민주당 의원에 표를 주지 말 것을 호소했다. 죽지 못해 미국에 들어오려는 캐러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인다.

죽기 살기로 미국에 들어와 살려고 하는 캐러밴. 그들의 심정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그들의 불법입국을 결사코 저지하려는 미국. 창과 방패의 모순인 것만 같다. 미국 정부가 골칫거리로 앓고 있는 불법입국과 불법이민자 문제.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현재 불법이민자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가 단연 1위다.

지난 해 뉴욕타임스 보도의 미국의 불법체류 현황이다. 멕시코 620만, 과테말라 72만, 엘살바도르 46만, 온두라스 33만, 중국 26만, 인도 26만, 한국 19만명. 한국은 7위다. 멕시코에 몰리고 있는 캐러밴 3개국은 2위에서 4위다. 불법체류 이민자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그들의 자녀 문제다.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나.

뉴스에서 나오는 멕시코의 캐러밴 모습들. 전쟁 속의 피난민 행렬처럼 보인다. 가족들끼리 잃어버리거나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의 참담한 모습. 그들은 불법이라도 좋으니 미국 땅에만 들어와 살게만 해달라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이 땅에 살고 있음에만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