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고 온 기억

2018-10-26 (금) 최동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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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내가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은 서둘러 JFK 공항을 빠져 나와서도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더 지난 후 였다. 커네티컷 주 안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집에 도착한 듯 한 안도감이 느껴져 여행에서 돌아 오거나, 타 주에라도 다녀 올 때면 늘 쉬어 가게 되는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커피를 사느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들처럼 전화기를 꺼내 볼 참이었다. 주머니에 없으니 차 안에 두고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둘러 차로 돌아와 운전 중에 늘 전화기를 꺼내 두던 자리를 몇 번 씩 확인하고, 의자를 앞뒤로 움직여 차 바닥까지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그 작은 물건은 어딘가로 깊숙이 숨어 버린 듯 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집에 도착할 때 까지 내 머리 속은 온통 전화기 생각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화기를 마지막으로 꺼내 든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출발 전날 머리맡에 두었던 것이 마지막 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호텔 로비에서 체크아웃을 하며 기다리는 동안 손에 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비행기를 기다리며 뉴스를 본 것도 같았다. 마치 감시 카메라를 되돌려가며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는 범죄물의 어느 수사관처럼 시간을 여행지의 출발 지점으로 되돌려가며 아내와 나의 동선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핸드폰에 관한 기억만은 확실하게 떠오르지를 않아 당황스러웠다.

휴가 중에는 일상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자고 했었다. 틈만 나면 습관처럼 들여다보던 세상 소식이나 불필요한 SNS에서의 해방은 여행을 떠나서나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린 탓에, 핸드폰을 꺼 두기로 한 결정은 제법 괜찮은 생각이었다. 물론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핸드폰을 켜고 잠깐씩 훑어보는 뉴스가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렇게 휴가가 끝날 즈음엔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 빼앗겼던 시간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전화기에 대한 기억이 두서없이 오락가락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확실했고, 순간순간의 생각을 기록해 두었던 메모와 저장된 사진,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어떻게 모두 복구 할 지가 막막했다. 결국 마지막 기대를 하며 묵었던 호텔에 전화를 했다. 맑고 상냥한 수화기 너머의 음성이 초겨울 바람처럼 서늘하게 전해졌다. 체크아웃이 되는 순간 모든 습득물은 프론트 데스크에 자동적으로 리스팅 되는데 그날 그 방에서는 어떤 습득물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호텔 이외에는 달리 알아 볼 길이 없으니 찾는 것도 딱 거기까지 였다. 핸드폰이 어딘가에 있기를 기대하며 찾아가는 순간들은 당황스럽고 불안했지만 막상 찾는 물건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히려 여지껏 느꼈던 불안감은 평정심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그 평정심은 체념과 포기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두고 온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기록들은 내 기억에 있는 한 영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소유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기억에 있으니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 있고, 손을 꼽아 세어보기 에는 너무 많은 시간 속에 머물 것이다. 풍경은 늘 가장 가까운 데에서부터 멀어지고, 가장 멀리 있고 기억되지 않는 곳으로 부터 불현듯 다가선다. 이 가을에는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또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또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 두고 온 기억은 오늘에서 보면 어제가 준 멋진 선물일테니.....!!

<최동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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