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가 머리 속에서 맴돈다. 불법입국자 어린이들의 격리수용, 국민을 둘로 갈라놓은 대법관 성추행 청문회, 기자의 살해 등 매일 매일 벌어지는 온갖 정치적 사건들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영화꺼리인가 해서이다.
책상 앞에서 손가락으로 클릭해서 20인치 모니터로 손쉽게 영화를 보는 넷플릭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가도, 예전에 무슨 큰 행사나 되듯이 영화관에 가던 일을 생각하며 세상이 바뀐 것을 새삼 느끼곤 한다.
넷플릭스에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는 리스트를 이것저것 눌러 내용과 배우를 살펴보다가 영화설명에 아들이 가 있는 ‘베를린’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데블스 미스트레스(Devil’s Mistress)’를 클릭했다.
이 영화는1930년대 영화배우 리다 바로바(Lida Baarova)와 나치 선전 장관이던 요세프 괴블스(Joseph Goebbels)에 관한 이야기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17세때부터 영화배우를 하던 리다는 큰물로 나가 성공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왔고, 당시 베를린 최고의 남자배우와 살면서 여배우로 승승장구하다가, 히틀러의 오른팔인 괴블스를 만나게 되고, 괴블스의 첩으로 2년간을 살게 된다. 그러나 히틀러가 나치의 선전과 미화를 담당하고 있는 괴블스의 사생활에 끼어들어, 리다는 다시 체코슬로바키아로 쫓겨 간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1945년 세상이 180도 바뀌자, 리다 바로바는 유태인들에게서 뺏은 보석을 소유했다는 등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잡혀 들어가고, 리다의 어머니는 경찰심문으로 사망하며 한창 여배우로 활동하던 동생 죠르카는 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자살을 한다.
이 영화에서는 너무나 예쁘게 생긴 여배우와 그의 가족이 당한 이야기지만,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가. 영화 속의 시대가 바로 내 부모님의 시대이다. 내 어머니도, 오빠친구가 부탁해서 인민군이 머물고 있던 일신국민학교에 가서 피아노로 군가를 쳐 줬다는 이유로, 부산 피난 가서는 경찰에 잡혀갔었다고 했다.
한 친구의 어머니는 시골 동네에 들어온 굶은 인민군에게 밥을 해주었다가, 임신한 채 시집에서 쫓겨나 딸을 키우며 일생을 혼자 사셨다. 지금 70대인 어느 분은 은퇴를 하고나서 더욱더 어린 시절 북으로 가신 학자이시던 아버지가 그립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내 주변에 부지기수이다.
지금 내가 속한 미국과 멀리 한국의 현실을 본다. 아직도 공산주의, 자본주의라는 말이 일상에서 왈가왈부되며, 공화당, 민주당, 보수, 진보, 우파, 좌파라는 이름아래 가까운 친구가 갈리곤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보통 인간들이 이념이라는 이름아래 당해내는 스토리가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구글로 찾아보니, 요세프 괴블스는 독일이 폐망하는 순간에도 독일국민이 승리를 확신할 정도, 그 당시로서는 최초로 TV를 이용해 사람들을 선동해온 사람이다. 히틀러에게 일러바쳐 첩인 리다를 쫓아내게 했던 괴블스의 부인 마그다는 히틀러가 죽은 다음날, 자신도 권총자살을 한 괴블스에 의해 여섯 명의 자녀와 함께 살해당하고 만다. 앞으로 한동안은 넷플릭스에서 좀 더 유쾌하고 밝은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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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 웨체스터 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