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장을 치러다오

2018-10-16 (화) 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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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는 다 써놓았다. 나는 죽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죽기 전에 내 장례에 대해서 분명히 말해놓는 것이 오히려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한 마디 해놓겠다.

가족장을 지내달라고 부탁했다. 나 죽으면 화장을 해서, 재를 어디든 편한 대로 뿌려버리라고 일러주었다.

뇌졸중에 걸려서 의식도 없이, 중병에 걸려있을 경우, 멍하니 식물인간처럼 여생을 살아갈 것 같으면, 인공호흡기 같은 걸로 나의 생명을 연장시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자동차면허증 갱신 때 내 시신을 기증한다고 서약했다. 누군가가 나의 시체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그게 나의 기쁨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몸에서 장기(臟器)를 떼어갈 때 아플까봐서 기증을 하지 않기로, 그리고 화장을 하면 뜨거움을 견디어 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화장 말고, 매장을 하라고 했다고 했다. 매장되어 있을 때 벌레가 몸을 뜯어먹을 때의 고통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웃으면서 살며시 물어보았다.

벌레에 뜯길 때 아프다고 혹은 불에 탈 때 뜨겁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의 느낌이고 생각인 것이다. 한번 죽어버리면 뜯기든 혹은 불에 타든 전연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그래도 혹시 아플까봐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내가 죽으면, 친구들은 너무 늙었거나 혹은 이미 죽었기에 나의 장례식에는 많이 참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자식들의 친구나 아내의 친구들이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다. 아내하고 자식들은 자기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장례식에 참석해달라고 부탁을 할 것이다. 이런 귀찮음과 고달픔을 남겨두고 싶지 않다. 가족끼리만, 장례식장이 아니고, 나의 집에 모여서 ‘금강경’을 함께 독송함으로서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해달라고 했다.

성직자들은 신도들에게 천상에 갈 수 있도록 평소에 하느님과 예수, 혹은 부처를 믿도록 알선해주고, 예배를 보도록 도와주고, 참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성직자들은 망자의 영혼을 직접 천국에 들어가게끔 해주지는 못한다. 천국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것은 살아생전에의 믿음과 행동 그리고 마음씀씀이를 예수가 점검해보고서 결정할 일이다. 천당입국은 예수의 몫이다. 그래서 가족장을 지낼 때 성직자들을 모시지 말라고 했다.

무덤이나 납골당 혹은 수목장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이런 것들(‘무납수’)을 만들어놓으면, 가족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성묘를 와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이런 부담을 없애주기 위해서 무납수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무덤이 있으면 자식들은, 귀찮아도 그래도 성묘를 몇 번은 올 것이다. 하지만 손자나 증손자는 나의 ‘무납수’가 어디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런 쓸모없는 ‘무납수’를 비싼 돈을 들여서 만들 필요가 없다.

내 기일(忌日)을 어떻게 지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면, 한두 번도 아니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이 내키면, ‘금강경’이나 독송해달라고 부탁했다.

‘금강경’(제5): “무릇 있는바 모든 현상(相)은 다 이것이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현상(諸相)이 진실상(相)이 아닌 줄을 보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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