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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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에서 거주자로”

2018-10-09 (화) 김성실/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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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뉴욕 거주자가 된지 47년이 훌쩍 넘어서며 이 삶의 터전에서 생을 마칠 것이라는 어렴풋하면서도 당연했던 생각에 변화가 왔다.

외동딸이 자신의 어린 딸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바로 곁에서 듬뿍 받으며 자랐으면 좋겠다는 간단명료한 제안을 하면서였다. 딸이 쌍둥이 딸들을 해산했을 때 보스턴 딸 집에 가서 산후조리를 석달간 해 주었고 계속해서 지난 4년간을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주간 씩을 손녀딸들과 함께 지냈던 방문자로서가 아니라, 아예 그 곳 거주자가 되라는 의사였다.

우리 부부는 은퇴한 지 오래 되었고, 두 딸아이를 데리고 보스턴 지역에 정착한 딸네가 이사할 상황이 아니고 보면 우리의 움직임이 비교적 논리적인 셈이어서 우리 여생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무 틀과 계획이 없이 백지 스케줄을 갖고 새로운 지역에서 제 2의 이민의 삶을 시작하려니 많은 기대가 되면서도 떠나는 아쉬움은 그득하다.

신앙의 공동체로 47년이나 끈끈하게 엮여진 뉴욕한인교회 교인들, 사회정의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지원해 준 연합감리교회 다인종 교인들과 여선교인들, 자녀를 키우며 결혼과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속속들이 나누었던 친구들, 동고동락했던 옛 직장동료들을 모두 남겨두고 훌쩍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생각과 추억들을 불러왔다.

이들과 섭섭하고도 기쁨이 가득 찬 작별인사를 나누며, 이 세상을 떠나는 훗날의 장례식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노년에 정든 곳을 떠나가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잘 못하는 것인지를 강력하고도 진지한 일가견으로 들려줌은, 헤어짐이 섭섭해 들려주는 따뜻한 인지상정이서 감사했다.

결혼생활 40년, 이번이 여섯번째 이사가 된다. 그 동안 꿈과 열정을 가지고 네 번의 이사를 하면서 점점 큰 집으로 옮겨가니 신이 났고 행복했었다. 8년전 다섯번째의 이사를 할 때에는 소유품들을 정리하여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 더 이상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버리며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산 것이 미안하면서도 또한 충족했던 삶을 감사했었다.

이제, 또 이사를 준비 하면서는 어느덧 성큼 눈 앞에 다가온 온 죽음을 향하며 옛 삶의 장을 과감히 닫는다. 그저 이만큼은 살지않을까 싶은 넉넉한 기간을 잡아보면서 앞으로 남은 새 삶의 장을 아주 조심스럽게 살포시 열어본다. 확신과 자신에 익숙했던 젊었었을 때의 계획과는 달리, 덤으로 주어진 듯한 미지의 생활을 바라보며 맑은 전율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방문자로 보내주시는 새 땅에서 내게 주신 축복을 그곳 거주자들과 나누며 살다가 어느 날 그들과 섭섭하고 조용한 이별을 하게 될 것임을.

<김성실/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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