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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나리깔나리!’

2018-10-09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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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0월9일. 오늘은 572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이면 아는 사람들이 문자로 순우리말을 많이 보내온다. 그 중에는 낯선 말이 있다. 뜻을 알면서도 유래를 몰랐던 말도 있다. 잘못 쓰고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참으로 정겹고, 아름다운 말들이 훨씬 많다. 순우리말은 어색하고 생경할 수도 있지만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한껏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칼럼에서 순우리말을 더듬어 보는 이유다.

우리가 일상에서 즐겨 사용하는 순 우리말의 유래를 알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이 제법 있다. 구레나릇이 그렇다. 구레나릇은 구레와 나릇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이다. 구레는 소나 말의 머리에 씌우는 ‘굴레’의 옛말이다. 나릇은 ‘수염’의 고유어다. 그러므로 구레나릇은 굴레처럼 난 수염이란 뜻이다.

‘어중이떠중이’도 마찬가지다. 어중이는 어중간하다가 명사화된 것이다. 신분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 하게 낀 사람이란 뜻이다. 떠중이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어중이떠중이는 여기저기에서 모인 변변치 못한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미주알고주알’은 어떤가? 미주알은 항문에 닿아 있는 창자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주알은 별 뜻 없이 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인 말이다. 그러니 아주 사소한 일까지 따지면서 속속들이 캐고 드는 모양이나 어떤 일을 속속들이 얘기하는 모양새를 이르는 말이 바로 ‘미주알고주알’이다. ‘시시콜콜’이 비슷한 말이다.

조상들의 재치가 넘치는 우리말도 있다. ‘미리내’가 그 중 하나다. 미리내는 은하수를 이르는 말이다. 미리내는 미르와 내가 합하여진 단어다. 미르는 용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내는 시냇물이나 강을 가리키는 단어다. 두 단어를 합치면 용이 사는 물이 되니, 그야말로 은하수란 표현이 딱이다.

‘가시버시’는 부부를 낮추어 이를 때 쓰이는 아내와 남편의 우리말이다. 가시는 계집, 마누라 등과 함께 아내를 가리키는 옛말. 오늘날에는 처의 뜻을 나타내는 ‘각시’라는 형태로 쓰이고 있다. 시집가지 않은 여자를 가리킬 때 ‘가시내’라고 한다.

이것은 가시가 아내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여성을 낮추어 부르는 데도 쓰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앞으로 부부동반이 잦은 연말모임에 손윗사람이나 여러 사람 앞에서 겸손하게 자기 부부를 낮추어서 일컬을 때 “저희 부부…”보다는 “저희 가시버시는…”이라고 부르면 멋지지 않을까 싶다.

잘 못 쓰고 있는 우리말도 있다. 맨송맨송하다가 대표적이다. 맨송맨송은 털이 나야 할 자리에 털이 없어 반반한 것이란 뜻이다. 혹은 술을 마신 뒤에도 취하지 않고 정신이 말짱할 때도 그렇게 말한다. 일할 것이 없거나 아무 것도 생기는 것이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흔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맨숭맨숭하다, 맹숭맹숭하다’는 뜻이 바뀐 것이 아니라 잘못 쓰이고 있는 셈이다.

‘알나리깔나리’는 무슨 말인가? 알나리는 나이가 어리고 키 작은 사람이 벼슬을 했을 때, 농담 삼아 ‘아이 나리’라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깔나리는 별 뜻 없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뒤에 붙인 말이다. 남 보기 부끄러운 차림이나 행동을 했을 때 주위의 아이들이 서로 놀리면서 하는 말이다. 흔히 쓰이는 ‘얼레리꼴레리’나 “얼레꼴레‘는 바로 ’알나리깔나리‘가 변해서 쓰이고 있는 말인 것이다.

온 세상이 문자 메시지로 대화하다 보니 SNS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매우 심각하다. 맞춤법이 틀린 표현들이 한 둘이 아니다. 엉터리 우리말도 수없이 날아다닌다. 심지어 비속어와 은어마저 판치고 있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앞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우리말은 꼭 그 뜻을 알고 사용하면 좋겠다. 아주 험한 뜻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아무 곳에서 마구 씀으로써 망신당하는 일도 없어야겠다. 그러니 더 이상 엉터리 우리말이나 상스럽고 천박한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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