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객기 훔쳐 ‘광란비행’

2018-08-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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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라이즌항공사 20대 직원 시택공항 이륙 후 추락사

▶ 허술한 항공보안 문제점 대두

여객기 훔쳐 ‘광란비행’
시택공항에서 가장 붐비는 시간인 금요일 밤 조종사 면허도 없는 항공사 직원이 여객기를 훔쳐 1시간10여분동안 ‘광란의 비행’을 하다가 섬에 추락해 사망했다. 이 여객기가 인구 300여만명이 밀집한 시애틀 도심에 떨어졌을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연방수사국(FBI)과 연방항공청(FAA) 등에 따르면 호라이즌항공사 직원인 리차드 러셀(29)이 지난 10일 밤 7시32분께 정비를 위해 시택공항 활주로에 계류중이던 76인승 터보트롭 Q400기종인 N449QX 조종석에 올라 당국의 승인도 받지 않은 채 이륙했다. 호라이즌항공사는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알래스카항공의 자회사로 주로 서북미지역 노선을 운항한다.

러셀은 2015년 호라이즌 항공사에 취직한 이후 활주로에서 여객기 견인과 수화물 관리 등을 맡아왔다.


그는 훔친 여객기를 몰고 거의 바다에 닿을뻔 하는 등 지그재그로 곡예 비행을 하면서 타코마 쪽으로 향하다가 이륙 후 1시간10분 정도 뒤인 8시40분 께 스텔라쿰 서쪽에 있는 조그만 섬인 크레톤 아일랜드에 추락했다. 이 여객기는 추락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고, 러셀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당국은 테러의 가능성에 대비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F-15C 전투기 2대를 발진시켜 문제의 여객기 주변을 살피도록 했지만 격추하지는 않았다.

당국은 지난 12일 현장에서 조종사의 녹음기록이 든 블랙박스와 러셀로 추정되는 시신의 일부를 찾아 현재 분석중이다.

그가 어떻게 여객기 조종석에 진입했고, 왜 비행했는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사 당국은 “자살 충동을 느낀 러셀이 여객기를 훔쳐 비행하다가 추락한 ‘자살 비행’같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러셀은 플로리다에서 태어나 7살 때 알래스카로 이주, 고교를 졸업하고 오리건주로 옮겨 부인을 만났으며 한때 부부가 베이커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워싱턴주로 이주해 섬너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호라이즌항공사에 취직해 일해왔다.

그는 비행도중 관제사와의 교신에서도 약간 정신 이상이 있는 듯한 말을 했다. 관제사가 “가까운 곳에 있는 맥코드 공군기지 활주로에 착륙하라”고 지시했지만 러셀은 “이제까지 잘 몰랐는데 나는 나사가 몇 개 빠진 망가진 인간”이라고 말하면서 착륙을 거부했다. 그는 또 “내가 이 같은 짓을 한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실망할 터인데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러셀은 과묵한 편이며 청년 선교단체인 ‘영 라이프’의 리더로 활동할 정도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면서 “그가 왜 여객기를 훔쳐 비행했는지는 모르지만 남을 해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당국이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있지만 조종사 면허도 없는 항공사 직원이 버젓이 계류장에 있던 항공기에 탑승해 이륙했을 정도로 항공 보안이 허술한 데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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