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입추 폭염’

2018-08-07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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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일원 무더위가 심술을 피운다. 불볕더위가 억척스럽다. 한증막 더위는 굽히지 않는다. 가마솥더위도 혹독하다. 하루하루 사나운 더위가 장난 아니다. 오죽하면 폭염주의보 발령이냐.

오늘(7일)은 24절기로 입추(立秋)다. 문자 그대로 ‘가을에 접어서는 날’이다. 하지만 기온은 한 여름이다. 어제, 오늘과 내일도 화씨 90도를 웃돈다. 올해뿐 아니다. 매년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더웠다고 보면 된다. 입추 때 기온은 항상 한여름에 해당된다. 가을 날씨하고는 무관하다. 오히려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입추폭염이다.

절기와 계절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절기가 양력기준이기 때문이란다.
음력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날짜를 세는 것이다.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양력이다. 절기는 태양이 황도(하늘에서 태양이 한 해 동안 지나가는 길)를 15도 움직일 때마다 하나씩 찾아온다. 황도를 한 바퀴 돌면 360도. 이를 24로 나누면 15도가 나오는 방식이다. 실제로 해마다 양력 8월 7일경이 입추다. 양력 기준으로 절기를 정해서다.


입추는 하지(6월21일)와 추분(9월23일) 한 가운데 날이다. 하지는 낮이 제일 긴 날. 추분은 춘분처럼 밤과 낮의 길이가 똑 같다. 하지는 낮이 가장 긴 날이지만 제일 덥지 않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식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하루 중 해가 제일 높이 떠 있는 정오가 아닌 오후 2-4시에 하루 최고 기온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매년 2월4일경인 입춘 때 추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더위가 한 풀 꺾이는 기점인 말복(오는 16일). 더위가 그치고 가을로 접어드는 처서(23일). 말복과 처서를 입추보다 늦게 정해 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진짜 가을은 입추가 지나고 보름이나 한 달 정도 지나야 찾아온다. 시원한 가을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다산 정약용은 더위를 피하는 시를 참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것은 소서팔사(消暑八事).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일이다. 그 여덟 가지는 이렇다. 소나무 밑에서 활을 쏘는 놀이를 즐기면서 더위를 식힌다. 홰나무 그늘에서 그네를 타다보면 아무리 더운 날씨도 거뜬하게 보낼 수 있다. 넓은 정자에서 투호놀이를 하다보면 웃고 즐기는 가운데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여름날이 지나간다.

시원한 대자리에서 내기바둑을 두며 신선놀음을 하다보면 한 여름이 지난다.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을 하며 더위를 이긴다. 동쪽 숲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잊는다. 비오는 날에는 시를 지으며 시간을 보내면 저절로 더위가 식혀진다. 달 밝은 밤에는 냇가에서 발을 담아 씻으며 더위를 물리친다. 이런 일들은 상상만 해도 더위가 물러가는 느낌은 준다.

다산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소서팔사로 그치지 않았다. ‘나무를 베어 바람을 통하게 하기’, ‘도랑을 터놓아 물이 흐르게 하기’, ‘누운 소나무를 올려 그늘 만들기’, ‘포도넝쿨을 처마에 올려 시렁 만들기’, ‘종을 불러 책에 바람 쐬기’, ‘아이들 모아 시를 가르치기’, ‘배를 엮어 튀어 오르는 물고기 잡기’, 냄비에 고기 삶아 먹기‘ 등을 제목으로 꾸준히 시를 지었다.

다산의 시를 보면 대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통해 더위를 이겨내고자 했다. 더위를 괴롭게 생각하기보다는 즐기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입추폭염. 무더위가 심하게 내리 쬔다. 불볕더위도 절정에 올랐다. 폭염의 심술보마저 터졌다. 한낮 땡볕 속에 일하다 쓰러지는 이들이 생길 정도다. 뉴욕일원은 초비상이다. 그야말로 한여름을 슬기롭게 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한 여름 더위 이기는 방법은 제법 많다. 사람마다 즐기는 피서지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소나 방법이 아니다. 마음의 문제다. 스스로를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요컨대 어디에 꼭 가야만 더위를 피하는 게 아니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여름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이다. 어떤 이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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