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웃는 얼굴의 오해

2018-08-07 (화) 정강 밀러/머시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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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친구 집에서 놀다가 다친 적이 있다.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그 친구의 엄마가 미안하다고 몇번이고 사과를 했다.

아이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친구의 엄마를 안심시킨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아이의 팔에 난 상처를 다시 한 번 보려고 하자 아이가 나에게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그런데 애니 엄마가 나 다쳤다고 말했을 때 왜 웃었어?"

처음에는 그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딸에게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이 다쳤는데 엄마인 내가 걱정하는 표정대신 왜 웃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날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친구 엄마와 얘기를 할 때 나의 표정을 보고 웃는다고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아이에게 엄마는 마음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친구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니까 미안해서 그런 표정을 지었다고 설명을 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 말이 더 이해가 안된다면서, 내가 종종 비슷한 상황에서 그렇게 웃는 경우를 봤고, 그 때마다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는 예전에 한국 방문 중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친척 어린아이가 부모로부터 꾸중을 듣고 있을 때, 주위에 있던 어른들이 모두 웃고 있어서 자신은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가지고 있던 사탕을 주면서 같이 슬퍼했었다고 했다. 그 당시 아이로 부터 그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 때는 아무래도 어려서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냥 별일이 아닌 듯 넘어갔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미국 고등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일을 할 때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난다. 하루는 한국에서 온 학생들을 가르치던 미국 교사가 왜 한국 학생들은 가끔 심각한 상황에 웃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외국에서 온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많은 그 교사는 아마 문화적인 차이일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인이 나에게 설명을 부탁했었다. 그 교사의 경험이 바로 아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 미국 교사는 나의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문화적 차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렇게 어른도 이해하기 힘든 문화적인 개념이 어린 아이에게는 더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문화마다 감정 표현과 바디 랭귀지가 많이 다르다. 예절이나 바른 언행에 대해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만, 작은 표정이나 몸짓 하나하나가 의사소통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어떤 부분은 그 상황에 따라 고치고 적응을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부분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은 쉽게 조정이 잘 되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문화가 다른 사회에 살면서는 남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태도를 고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강 밀러/머시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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