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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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서”

2018-08-06 (월)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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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처연한 모습을 보고 짐짓 놀랄 때가 있다. 이때 자기반성이나 새로운 도약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심한 자괴감으로 좌절하기도 한다.

14세기 영국을 성공적으로 다스린 군주는 에드워드 3세다. 에드워드 3세의 치세는 길었고, 그의 유업은 장엄하고 영웅적이어서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바다와 육지에서 거둔 혁혁한 승리를 바탕으로 약소국 영국을 오랫동안 평안하고 강하게 지켜낸 군주가 바로 에드워드 3세다.

1377년, 에드워드 3세는 노환으로 영면했다. 그 즈음에 외아들 흑태자가 전쟁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이때 에드워드 3세의 손자 리처드 2세가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고 왕위에 올랐다. 당시 리처드 2세의 나이는 10살에 불과했다. 왕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나라를 통치할 능력이 없으니 숙부들의 섭정이 불가피했다. 숙부들은 모두가 야심가라서 어린 조카의 자리를 항시 넘보았다.

이를 알고 신변의 위기를 느낀 리처드 2세는 숙부들을 반역자로 몰아 한 사람씩 제거하거나 유럽대륙으로 유배 보냈다. 그런 와중에 숙부 중 한 사람인 곤트의 존이 죽었다. 리처드 2세는 존의 아들인 헨리에게 돌아갈 영지를 모두 압수한 후, 헨리를 해외로 추방했다. 경쟁자의 목숨뿐 아니라 후손에게 돌아 갈 영지와 재산까지 무자비하게 몰수했다.

왕궁 안의 권력 다툼과 내분을 수습하는 사이 나라는 혼란과 재난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도처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백성이 죽었다. 경제는 핍절해져서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불만을 표출했다. 리처드 2세는 농민에게 분노했고, 봉기한 농민을 체포하여 불로 태워죽이거나 농노로 삼았다.

리처드 2세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고 외모가 우아한 청년으로 성장했으나 심성이 조급하고 성품이 포악하여 의회와 백성에게서 마음을 얻지 못했다. 결국 실망한 충신들이 하나 둘 왕의 곁을 떠났고 그는 고독한 군주로 전락했다.

아직 정국이 아득히 어지러운데, 리처드 2세는 자신의 인기 관리를 위해 아일랜드 방문을 추진했다. 주변에선 아일랜드 행을 말렸다. 왕은 듣지 않았다. 왕이 왕궁을 비우고 아일랜드에 거한다는 정보를 접한 정적 헨리는 급히 군사를 이끌고 런던으로 쳐들어 와 왕궁을 접수했다. 왕위 찬탈이다.

곧이어 리처드 2세가 헨리 수하의 군사에게 붙잡혀 왕궁으로 들어왔다. 리처드 2세가 보니 헨리의 머리 위엔 왕관이 빛나고 있었고, 신하들은 헨리 쪽에 도열해 있었다. 이때 리처드 2세가 조용히 거울 하나를 들고 일어섰다. 그 거울을 한참 응시하다가 헨리 4세를 향해 내던지며 외쳤다.

“아, 거울도 사람처럼 아첨을 하는 구나/ 나 한창 좋은 세월이었을 때 날 따르던 무리처럼, 거울도 나를 속이는 구나. 이 얼굴이 날이면 날마다 왕궁 지붕 아래에서 일만 명을 거느리던 바로 그 얼굴인가/ 부서지기 쉬운 영광이 얼굴에 빛나는 구나/ 말씀 없으신 임금님, 잘 새겨 두시오/ 내 슬픔이 내 얼굴을 얼마나 빨리 깨트렸는지...

당신은 리더인가. 부서지기 쉬운 영광에 얼굴을 묻지 말고, 측근의 물거품 같은 아첨에 속지 말라. 거울도 때로는 주인에게 아첨을 하고 세월의 눈금을 속인다,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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