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추모하며

2018-08-03 (금) 홍성애/ 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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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전제하고 태어난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죽어가는 가는 천차만별이다. 이번에 정의당 노회찬의원의 투신자살은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첼로를 가르칠 정도로 수준 있고 여유 있는 부모와 한국에선 일류 가는 좋은 학벌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그가 굳이 일생 험한 길을 택한 건,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그의 사상이었고 투철한 의지였다. 그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그들과 더불어 생활하고, 약자, 불구인편에 서서 처절한 투쟁의 삶을 살았다는 건 높이 우러러 볼 일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서 의원수가 몇 안 되는 야당의 군소정당에 속해 일한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가시밭길이다. 온갖 불이익을 당하면서 옳다고 여긴 일에 헌신한다는 건 그만큼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감옥을 들락거리며 출산시기도 놓쳐 무자식이었을까? 입양을 하려 했으나 자격미달 판정으로 허가가 안 났다고 하니 그 때의 쓰라린 심정을 헤아려본다.


끝없이 늘어선 조문객들의 행렬은 그를 추모하는 순수한 마음을 안고 작별인사 차례를 기다렸으리라. 각자 나름대로 그의 일생의 행적과 고난을 돌아보며 존경과 연민, 안타까움을 안고 그 자리에 왔을 것이다.

혹자는 “그까짓 5,000만원에 목숨을 끊다니! 엄청 더 많은 액수의 비리를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머리 들고 살아가는 세상에...” 할 테고, 또는 “그래도 부정한 돈 먹은 건 여하간 잘못이지. 늘 깨끗한 척, 정의로운 척 하더니…” 하며 비난조로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유의 할 점은, 액수문제 보다는 받아먹었다는 부정행위에 대한 대처다. 정치인으로서, 낯 뻔뻔하게 처벌할 테면 해라는 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자살을 택했다. 일생 살아온 자기의 깨끗한 이미지의 손상, 신념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아마 그에겐 죽을 만큼 못 견딜 문제였던 듯싶다. 귀한 생명을 내던질 만큼 양심을 가진 정치가가 요새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나는 자살행위 자체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고귀하고 맑은 양심, 죽음으로서 죄과를 치르려는 책임감은 존경하고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넘겨주고 갔다. 그가 못 이루고 떠나간 사회적 난제들은 실상 우리가 심각하게 개혁해야 할 상황들이다. 그가 추구했던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사회의 약자계층들이 행복해지는 풍토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한갓 도덕적 순결주의의 희생양으로 치부하기엔 한 생명의 의미가 너무 헛되지 않겠는가?

<홍성애/ 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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