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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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가 만드는 미국

2018-08-0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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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리아에 살다보니 롱아일랜드 시티에 있는 직장으로 오가는 길에 각 나라의 전통식당들이 즐비한 도로를 지나게 된다. 그날 아침 은행, 우체국 등의 할 일에 따라 35나 36, 브로드웨이 애비뉴 중 하나를 지나고 스타인웨이나 노던 블러바드를 건넌다.

애비뉴를 따라 가다보면 그리스 식당, 콜롬비아 식당, 중동 식당, 스페인 식당, 태국 식당, 중국 식당, 일본 식당 등 세계의 음식점들을 마주친다. 콜롬비아 식당을 지날 때면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콜롬비아가 세네갈을 꺾고 16강에 진출하자 노랗고 파란 유니폼 색을 입은 손님, 종업원들이 시끌벅적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튀긴 송어요리, 구운 바나나, 콩 수프를 먹는 지 마는 지, 정신없었지만 함께 즐거웠다.

스페인 식당을 지나칠 때면 건축가 가우디의 동화의 나라가 있는 바르셀로나 출신일까, 알함브라 궁전의 기타 선율이 감미로운 그라나다 출신일까가 궁금해진다. 손님들은 커다란 철판에 담긴 빠에야, 와인에 과일을 넣은 샹그리아를 마시면서 화려하고 신나는 플라멩고 선율을 즐기겠지 싶다.


그리스 식당 앞을 지날 때는 최근 아테네 외곽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에서 일가친척들이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된다. 주방에서 싱싱한 해물요리에 들어가는 새우와 오징어를 까느라 손가락이 퉁퉁 붓도록 힘들게 번 돈을 고국에 보내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노던 블러바드를 건너기 전에는 케밥 전문점이 있다. 저 식당 주인과 손님은 어디서 왔을까? 터키? 지중해? 사막? 양이나 닭 꼬치구이 케밥 간판을 보면서 복잡한 전쟁터를 떠올리기도 한다. 일본 식당도 빠질 수 없다. 초밥과 소바, 진간장 맛이 강한 우동, 돼지뼈를 우린 진한 라면국물 맛이 연상되면서 홋카이도 출신일까, 칸토 출신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들 모두는 저 먼 곳에서 푸르른 꿈을 가슴에 품고 비행기를 탔고 미국 땅에 내렸다. 아스토리아에는 네덜란드와 독일, 아일랜드, 유대인, 그리스인들뿐만 아니라 지금은 히스패닉, 중동, 동양인도 제법 많이 산다. 이들은 모두 이민자다. 시민권자이거나 현재 신분미비자이지만 신분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미국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는 말이 왜 이 땅에서 터져 나오는가? 말하는 사람도 이민자이면서. 이 땅의 원래 주인은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이다. 이들만이 그 말을 한다면 할 자격이 있다.

얼마 전 뉴저지주 팰리세이즈 팍이 인종차별 문제로 뜨거웠다. 지난 6월5일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제임스 로툰도 시장이 크리스 정 시의원에 밀려 낙선 위기에 다다르자 로툰도 시장 어머니가 인종차별의 포문을 열었다. ‘빌어먹을 한인들이 이 타운을 차지 해. 우리 미국인들은 질렸다’ 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한인들은 모두 자격미달” 이라고 뉴저지 팰팍 시장선거에 출마한 앤소니 윌리 샘보그나 후보도 지난 7월17일 SNS에 인종차별적인 글을 올렸다. 결국 7월24일 열린 팰팍 타운회의는 인종차별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고 급한 불을 껐다.

UN이 매년 3월21일을 세계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정하고 미국 법은 인종차별에 관한 규제와 법률이 엄격하다지만 앞으로도 인종차별 문제는 계속 불거져 나올 것이다.

인종차별이란 것은 다른 민족보다 문화, 기술, 신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런 경우를 당했다싶으면 일단 언어에 대한 오해인가, 이 사람 개인의 인성이 차별적이고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너 어디서 왔어?” 하고 물으면 “ 넌 어디서 왔냐? ”고 묻고 식당 같은 곳에서 피부색으로 인해 불친절을 당하면 팁을 주지 말라. 지나치게 기분이 나쁘면 “너 인종차별주의자냐?“ 하고 단호히 물으라. 나의 당당함이 상대방의 쓸데없는 기를 꺾는다. 미국은 이민자가 만드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주인은 이민자다. 주인의식을 갖자.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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